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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균 논설위원
우리는 언제쯤 국민의 진정한 박수를 받으며 이곳을 떠나는 대통령을 볼 수 있을까. 1987년 5년 단임제 헌법 개정 이후 청와대에 입주한 5명의 전임 대통령들은 예외 없이 정권 말에 코너에 몰렸고, 신임 대통령을 향한 환호를 뒤로하며 쓸쓸히 그곳을 떠나야 했다. ‘콘크리트 지지층’이 있는 박근혜 대통령만은 예외가 될 것이란 관측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총선의 민의는 ‘예외 없음’이라고 말한다.
전임 대통령은 ‘오래된 미래’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재임 중인 2011년 2월 1일 “개헌은 여야가 머리만 맞대면 그렇게 복잡할 것은 없다. (지금 하는 것은) 늦지 않고 적절하다”며 취임 후 처음 개헌 필요성을 역설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6년 2월 25일 취임 3년을 맞아 “대통령이나 정부, 국회든 5년의 계획을 세워 제대로 일을 하려면 중간에 선거가 너무 많은 것은 좋지 않다”며 개헌 드라이브에 시동을 걸었다. 이명박 대통령 당시 ‘미래권력’이던 박 대통령은 개헌에 반대했고, 노 전 대통령에 대해선 “참 나쁜 대통령”이라며 브레이크를 걸었다. 왜 전임 대통령들은 똑같이 집권 4년 차에 개헌론을 꺼내 들었을까?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개헌은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라며 반대해 왔다. ‘포스트 박근혜’가 안 보이는 친박(친박근혜) 핵심들이 지난해 말 ‘반기문 대통령에 친박 실세 총리’를 골자로 하는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론을 꺼냈을 때도 찍어 눌렀다. 당시 박 대통령은 레임덕(임기말 권력누수) 걱정 같은 건 해본 적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 오만에 대한 심판’으로 규정된 이번 총선으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전임 대통령이 집권 4년 차에 개헌론을 꺼낸 이유도 자명하다. 개헌은 레임덕마저 빨아들일 블랙홀이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으로 개헌으로 가는 최적의 정치적 토양이 조성됐다고 나는 본다. 레임덕에 시달릴 박 대통령과 호남 승부에 정치생명을 걸었던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는 이만한 위기 타개책이 없다. 총선 전 “3당이 되면 대선 결선투표제를 추진하겠다”고 공언한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에게도 솔깃한 카드다. 총선 결과 대선주자가 ‘전멸’당하다시피 한 새누리당도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의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다.
개헌의 토양 무르익었다
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