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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 스타일리스트 한혜연~ 옷으로 말하는 사람

입력 | 2016-04-15 13:21:00


연예계 ‘미친 인맥’으로 유명한 톱 스타일리스트 한혜연이 KBS 퀴즈 프로그램〈1 대 100〉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녀에게 돌아간 상금은 무려 5천만원. 부모님에게 ‘몽땅’ 드리겠다 선언한 그녀의 인생 이야기가 궁금했다.




잡지계에서는 그녀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지만, 요즘은 지나가는 사람들도 한눈에 알아볼 정도로 유명 인사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스타일리스트, 한혜연 얘기다. 그녀는 최근 MBC 예능 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패션 노하우를 유쾌하게 전하는가 하면, 패션과는 관계없어 보이는 KBS 퀴즈 프로그램 〈1 대 100〉에도 출연하며 지상파 방송에 얼굴을 내비쳤다. 온스타일의 〈도전! 수퍼모델 코리아〉 〈겟 잇 스타일〉 〈NEW 솔드아웃〉 같은, 스타일 채널에만 전문가로 모습을 드러냈던 과거와는 사뭇 다른 행보다. 게다가 재미 삼아 출연했던 퀴즈쇼에서 당당히 우승까지 거머쥐며 5천만원의 상금을 획득했으니 이제는 ‘진짜 한혜연’의 모습이 궁금했다.

약속 시간 30분 전, 그녀가 이미 만나기로 한 장소에 나와 있었다. 날렵한 느낌의 안경과 두꺼운 헤어밴드, 여기에 커다란 링 귀걸이까지. 어지간한 사람들은 소화하기 힘들 것 같은 패션 아이템으로 스타일링한 그녀는 대여섯 명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한창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녀는 “이동하는 시간을 절약하려고 점심 미팅 장소를 일부러 한 곳으로 통일했다”며 먼저 인사를 건넸다.

‘연예계 황금 인맥’이라는 수식어답게, 그녀 주변엔 사람이 끊이질 않는다. 그녀와 작업해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정말 성격 좋고 유쾌한 사람”이라고 입을 모은다. 두껍게 그린 아이라인은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 같은’ 인상을 풍기지만, 실제로 만나보면 서글서글하고 속정이 깊은 게 그녀의 매력이다.

“세상이 참 좁아요. 한 번 만난 사람과 다음에 또 만나는 경우가 태반이죠. 연예인 개인 스타일리스트로 일을 시작했다가 잡지 쪽으로 방향을 틀었어요. 1990년대에 패션지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제가 할 수 있는 일도 많아졌죠. 입소문이 나서 알음알음으로 광고 일도 하게 되고, 톱스타들 스타일링도 하게 되면서 업계에선 점점 이름을 알릴 수 있었어요. 스타일리스트로 15~20년 차였을 때가 가장 전성기였죠.”

그녀는 어려서부터 옷에 관심이 많았다. 초등학교 때 혼자 버스를 타고 이태원에 가서 실크로 된 점퍼를 사 입을 정도로 조숙하긴 했다. 그때가 1980년대인 것을 생각해보면 꽤 대담했다. 스타일리스트가 된 후에는 이효리, 공효진, 소지섭 등 내로라하는 연예인들의 스타일링을 맡으며 이름을 알렸다. 하나같이 ‘패셔니스타’로 불리는 인물들이다. 그중에서도 이효리는 스타와 스타일리스트의 관계를 넘어선 절친이다.

“효리는 표현이 명확해요.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옷을 들고 가면 ‘별론데?’하고 돌직구를 날리는 편이죠. 보통 다른 연예인들은 ‘그래도 한번 입어볼게요’ 하잖아요. 전 그래서 더 좋았어요. 앞에선 미소 지으면서 뒤에서 다른 말하는 사람이 아니니까요. 소화하기 어려운 콘셉트도 제가 잘 준비해 가면 ‘이래서 내가 언니랑만 일하지’ 하고 툭 말해주는 게 사람을 참 뿌듯하게 해요. 그래서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들죠. 저는 사람을 사귈 때 초반엔 약간 거리를 두는 편이에요. 연예인과 함께 일할 땐 특히 상대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는 게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철저한 준비는 그녀가 업계에서 인정받는 이유 중 하나다. 가령 세 벌의 옷이 필요하다고 하면 그 10배 정도 되는 서른 벌을 챙겨 가는 것이 그녀의 철칙이다. 얼마 전엔 스타일리스트로서 굉장히 뿌듯한 경험도 했다. SSG.com 광고에서 배우 공효진이 입은 의상이 ‘대박’을 친 것이다. CF가 방영된 후 문의가 쇄도해 광고주 쪽에서 그녀에게 브랜드 정보를 따로 요청할 정도였다. 한혜연의 이름 앞에 ‘최고’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다.

지난 2월엔 ‘로또 당첨’에 버금가는 행운도 찾아왔다. 기대 없이 출연했던 퀴즈 프로그램에서 우승을 거머쥐며 5천만원의 상금을 획득한 것이다. 평생 ‘패션’만 보고 살아온 그녀가 각종 시사 상식을 척척 맞히는 걸 보며 놀란 이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망신만 당하지 말자’는 심정으로 나갔어요. 녹화를 하는 와중에도 ‘대체 내가 이걸 왜 한다고 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계속했죠. 그런데 답을 찍는 족족 정답이라고 해서 저 역시 어안이 벙벙했어요. 솔직히 ‘실력으로 했다’는 말은 못 해요. 〈1 대 100〉 녹화 들어가기 전에 한 가지 마음먹은 건 있었어요. ‘처음 고른 답을 번복하진 말자’는 거였죠. 주변에선 ‘직관력 짱이다’라고도 하시는데 직관은 무슨, 그냥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마지막 문제를 맞히고 나서도 ‘이거 몰래 카메라 아니야? 아니지, 나 따위에게 뭐 하러 몰래 카메라를 해?’라고 생각했다. 우승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도 쉽게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싶었다.



상금보다 값진 선물 “작년에 좋지 않은 일로 가족 모두가 힘든 한 해를 보냈거든요. 부모님 마음에 위로가 될 만한 일이 뭐 없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 프로그램을 즐겨 보신다는 거예요. ‘그래요? 그럼 내가 거기 나가서 상금 받으면 부모님 다 드릴게요’ 하고 나갔죠. 솔직히 우승에 대한 기대는 없었고, 그냥 TV에 나온 딸을 보면 기뻐하실 것 같아서 출연했어요.”

돌이켜보면 한혜연의 인생엔 이렇다 할 이벤트가 없었다. 그렇다고 특별히 사고를 친 적도 없었고, 이 업계에 들어선 후 다른 일을 기웃거린 적도 없다.

남들처럼 결혼하고 엄마가 되는 길을 택하지도 않았다. “순리대로 산 인생은 아니지 않나”라며 피식 웃었다. ‘별일 없이’ 살던 그녀에게 작년은 참 힘든 한 해였다.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일이 연달아 터지며 그녀에게도 극심한 슬픔과 우울감이 몰려왔다. 슬럼프였다.

“허허하고 다니니까 사람들은 제가 슬럼프를 겪는 줄도 몰랐어요. 마음은 미치도록 힘들었지만 유난을 떨고 싶진 않았거든요. 사실 작년엔 너무 우울해서 모임도 잘 안 나가고 초대받은 행사장에도 가지 않았어요. 익숙해진 삶에 대해 애착이 식었던 거예요. 인생이 왜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는 건지 속상했어요. 사람이 이래서 일을 그만두는구나 싶더라고요.”

이번 우승은 그녀에게 꼭 필요했던 하나의 이벤트였다. 상금 액수를 떠나 지쳤던 그녀에게 활력을 불어넣어줬다. 신기하게도 〈1 대 100〉 출연 이후 일이 술술 잘 풀렸다. 홈쇼핑 매출도 200% 이상 신장했고, 브랜드와 콜래보레이션 제의도 전보다 훨씬 더 많이 들어왔다. 비온 뒤 더 땅이 굳는다는 말이 이해가 갔다.

“작년까지만 해도 매너리즘에 빠졌었는데 요즘은 이 일이 굉장히 새롭게 느껴져요. 작년 연말 SNS에 ‘‘엄마에게’라는 이름의 향이 있다면 어떤 향일까?‘라는 글을 올렸는데 한 브랜드에서 그걸 보고 먼저 연락을 해 온 거예요. 제 추억을 담은 향을 함께 만들어보자면서요. 굉장히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서 흔쾌히 수락했어요.”


스타일리스트의 취향 쌍꺼풀 없는 눈 위에 그린 짙은 아이라인은 그녀의 트레이드마크다. 그녀는 한 방송에서 “아무리 바빠도 이건 꼭 그린다”며 자신의 인생템으로 아이라이너를 꼽기도 했다.

“예전에는 민얼굴로 다녔어요. 그런데 제가 눈꺼풀에 힘이 약해서 눈이 점점 처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주변에선 수술을 권했는데 제가 겁이 많아서 쉽게 못 하겠더라고요. 한 5년 전쯤 처음 그리기 시작했는데 주위 반응이 괜찮더라고요. 처음엔 아이라인 그릴 때 30분 걸렸는데 지금은 5분이면 끝나요.”

직업 특성상 손을 많이 쓰는 그녀는 손 관리에도 각별히 신경 쓴다. 시중에 나와 있는 핸드크림 제품 중 안 써본 것이 없을 정도로 핸드크림 마니아다. 특별 관리를 받아와서 그런지 그녀의 손은 유난히 보드랍고 매끄럽다.

“한 달 수입의 5분의 1 정도는 쇼핑하는 데 써요.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옷이 많아 정리를 못하면서도 엄청 사죠. ‘네타포르테’나 ‘파페치’ 같은 인터넷 쇼핑몰부터 동대문시장, 멀티숍, 백화점, 심지어는 홈쇼핑까지 가리지 않아요. 꼭 비싼 옷만 사는 것도 아니에요. 보기에 괜찮다 싶으면 1만원짜리 청바지도 사 입는걸요.”

평소 심플한 옷을 선호하는 그녀는 자신의 패션에 포인트를 줄 만한 액세서리에 특별히 관심을 두는 편이다. 특히 신발을 많이 사는 편인데, 예전에는 디자인 중심으로 봤지만 요즘은 착용감도 고려해 구입한다.

“이번 시즌엔 어깨를 드러낸 스타일이 많지 않을까 싶어요. 데님 같은 경우도 이전보다 더 과감한 디테일로 변형된 것이 유행할 거라고 봅니다. 스카프로 포인트를 주는 것도 추천해요. 길이감은 있는데 폭이 좁은 디자인이 멋스럽지 않을까 싶어요.”

매 시즌 어떤 디자인의 옷이 나올까 기대되는 것처럼 한혜연은 유난히 기대되는 한 해를 맞이하고 있다. 톡톡 튀는 상상력으로 즐겁게 작업하고, 좋은 남자를 만나 진한 연애를 하는 게 올해의 목표다.

“몇 년 동안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오는 5월쯤엔 밀라노를 여행할 계획이에요. 제가 패션 관련 일을 하면서도 사실 밀라노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밀라노 촌년’이거든요(웃음).”

거리 한복판에서 촬영을 마치고 인사를 나누는데 그녀가 “주려고 일부러 챙겨 왔다”며 작은 선물 꾸러미 하나를 건넸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라면서. 거절할 새도 없이 그렇게 꾸러미를 덥석 손에 쥐여준 채 그녀는 ‘한남동의 왕언니’ 같은 포스로 멀어져갔다.





글 · 정희순 | 사진 · 김도균 | 디자인 · 박경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