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 밸런타인의 ‘보수주의자의 핸드북’
보수층을 대표하는 잡지 ‘내셔널리뷰’는 “이런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가 되면 미국 보수주의는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반면 트럼프 지지자들은 “진보 세력의 담론 때문에 사실상 침묵을 강요당해온 다수의 우리(보수주의자들)를 진정으로 대변해주는 후보는 트럼프뿐”이라고 말한다. 이쯤 되면 무엇이 미국의 보수주의인지 궁금해진다.
대표적 보수 논객이자 라디오 진행자인 필 밸런타인(57)이 대선의 해를 맞아 펴낸 ‘보수주의자의 핸드북(The Conservative‘s Handbook·사진)’은 이 질문에 대한 일종의 종합해설서. 보수와 진보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슈들을 하나하나 나열한 뒤 보수의 가치가 왜 옳은지를 구체적 사례를 토대로 설득한다. 보수 성향의 폭스뉴스 대표 앵커인 숀 해너티가 “보수주의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내용을 공허한 주장이 아니라 치밀한 논리와 구체적 사실로 서술한 책”이라고 호평했다.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PC)’에 대한 비난이 그렇다. PC는 성 차별, 인종 차별적 언어나 소수자, 약자에게 불쾌감을 주는 표현을 삼가야 한다는 취지의 사회운동이다. 트럼프는 “나는 정치적으로 올바를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그것이 미국 정치를 망치고 있기 때문”라고 말해왔다. 정치인들이 PC의 틀에 갇혀 논쟁적 이슈의 본질을 언급하지 못하고, 그러니 문제가 드러나지 않고 해결책도 마련하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저자도 “다른 목소리를 전혀 낼 수 없게 만드는 PC는 파시즘의 진보 버전으로 전락했다”고 썼다.
“한 중년 여성이 나무 위에 올라가 위험하게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너희들 새끼 원숭이들처럼 뭐 하는 짓이니?’라고 훈계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아이들은 흑인이었다. 그 여성은 인종차별적 언어를 썼다는 이유로 벌금을 물었다. 내(저자)가 농담하는 게 아니다. 이게 PC의 현실이다.”
미국에서 소수 인종인 흑인들은 현재 대표적인 친(親)민주당, 반(反)공화당 세력으로 분류된다. 역설적이게도 노예였던 흑인들을 해방시킨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공화당 출신이었다. 미국 역사책들은 “흑인들은 원래 (링컨의) 공화당을 지지했다. 그러나 1930년대 대공황이 닥친 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사회보장제도를 도입한 민주당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이후 민주당 지지로 돌아섰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미 공화당 주류의 진짜 고민은 트럼프가 위협하는 보수주의가 아니라, 그렇게 하나둘 떠난 민심을 되찾아올 방법이 아닐까.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