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우 우리은행 감독(왼쪽)이 지난달 20일 여자 프로농구 4년 연속 우승을 달성한 뒤 선수들을 얼싸안고 기뻐하고 있다. 위 감독은 프로선수 시절 주로 후보 신세였던 무명선수 출신이다. 동아일보DB
이종석 기자
지난해까지 우리은행은 매번 하와이로 포상휴가를 갔다. 선수들 사이에서 “하와이는 이제 지겹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래서 이번엔 휴가지를 바꿨다. 올해까지 4년 연속 우승한 우리은행은 4월 포상휴가가 연례행사처럼 자리를 잡았지만 2012년까지만 해도 4년 연속 꼴찌만 했던 팀이다. 달라진 건 위 감독 부임 후부터다. 위 감독이 팀을 맡은 첫해인 2012∼2013시즌부터 이번 시즌까지 한 번도 우승을 놓치지 않았다.
“과외선생을 구할 때 학부모들은 서울대 출신을 원한다. 왜 그렇겠냐.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잘했던 사람이 더 잘 가르치니까 그렇다. 감독도 마찬가지다. 선수 때 잘했던 사람이 당연히 더 잘 가르친다. 그런 사람한테 감독을 맡기는 게 당연하다.” 이런 소리를 거리낌 없이 해대는 프로농구 감독 A가 있었다. A는 선수 시절에 날렸다.
선수 때 이름을 날렸던 B가 감독이던 때 일이다. “나는 이 나이에도 들어가는데 이게 그렇게 어렵냐?” B가 이런 말을 하면서 선수를 옆에 세워 놓고 3점슛을 던지는 장면을 직접 본 적 있다. ‘내가 선수일 때는 다 되던데 너는 왜 못하냐?’ 하는 소리다. 선수를 적으로 만드는 짓이다. 이런 짓을 두고 유재학 모비스 감독은 “감독으로서 망하는 지름길”이라고까지 했다. 축구 선수로 성공한 C는 감독 시절 모든 기준을 자기 선수 때에 맞춰 놓고 가르치려 들어 선수들 사이에 불만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내가 선수 때는 말이야…” 하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다고 한다. 당시 C가 맡고 있던 팀에서는 ‘잘난’ 감독이 좋은 성적을 내는 꼴을 보기 싫어 경기를 대충 뛴 선수들도 있다. B도, C도 감독으로서는 실패했다. A도 감독으로서는 선수 때만큼의 능력을 보여주지 못해 지도자로 성공했다는 소리는 못 듣는다.
안 되는 걸 되도록 가르쳐 주는 게 지도자가 할 일이다. “이게 왜 안 되냐?” 이래 버리면 감독이 따로 있을 필요가 없다. 너도나도 다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감독의 잘나갔던 선수 시절을 굳이 높이 평가해 줄 이유도 없다. 꼭 스포츠 감독이 아니더라도 회사에도, 학교에도 이런 ‘잘난’ 감독류의 인간들 꼭 있다. 사방이 적인 사람들이다.
“나도 선수 때 그런 게 잘 안 돼서 참 힘들었다. 이렇게 한번 해봐라. 나는 도움이 많이 됐는데….” 국가대표 근처에도 못 가본 위 감독이 만년 꼴찌 우리은행을 4년 연속 정상에 올려놓은 데는 틀림없이 이런 소통 능력도 역할을 했다고 본다.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잘난’ 감독들한테는 쉽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선수 때 잘나가고도 감독으로서는 실패하는 이유가 별것 아닌 이런 말을 못해서일 수도 있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