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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프브누아 쉬베, ‘그림의 기원’.
그림 속 소녀, 디부타데스가 최초의 미술 제작자입니다. 기원전 600년경 그리스 코린토스에 살았고, 아버지는 흙을 빚고 굽는 일을 했다지요. 옹기장이 딸은 이별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날이 밝으면 사랑하는 청년은 전쟁터로 떠납니다. ‘어떻게 연인을 영원히 기억할 수 있을까.’ 슬픔 속에서 소녀는 청년의 모습을 똑같이 그려 남기기로 했습니다. 똑 닮게 그리려면 숙련된 기술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런 솜씨가 없어 그림자를 본뜨기로 했지요.
어둠 속 램프가 벽면에 사람 형상의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그림 속 소녀의 진중한 손길이 청년의 날렵한 콧날 그림자를 지나고 있습니다. 내일부터 애인을 대신할 그림입니다. 생김새가 가장 잘 드러나는 옆얼굴을 택할 수밖에요. 매일같이 그림을 보며 연인의 안전도 기원할 것입니다. 죽음을 연상시키는 자세는 안 됩니다. 청년이 수평으로 누운 대신 수직으로 벽에 기대고 있습니다. 소녀는 그림과 함께 힘든 시간을 보낼 것입니다. 청년은 미동조차 없이 그림자 본뜨기에 적극 협조하고 있군요.
세월호 추모의 숲에 기억의 벽이 설치되었답니다. 참사 발생일을 비롯하여 탑승객과 희생자의 수를 조형물 곳곳에 상징적으로 수치화했답니다. 기억의 벽 설치 소식을 듣고 사랑하는 사람을 기억할 의도로 시작된 최초의 그림을 떠올렸습니다. 값진 희생을 함께 기억하고자 공공장소에 두었던 최초의 조각을 생각했습니다. 디부타데스와 코린토스 사람들을 마음속에 그려 보았습니다. 우리도 사무치게 아픈 기억을 능동적 과거로 되살릴 수 있을지 자문해 봤습니다.
공주형 한신대 교수·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