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비례대표는 지역구 선거로 반영하기 어려운 소수자 집단, 사회 취약계층, 다양한 직능의 이해를 균형 있게 대변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다. 장애인 비례대표는 15대 총선에서 처음 등장했다. 지금처럼 지지하는 후보와 정당에 한 표씩 두 장의 표를 행사할 수 있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도입된 2004년 17대 총선부터는 꾸준히 2명 이상의 장애인 비례대표가 선출됐다. 2008년 18대 국회에서는 4명이나 나왔다. 이번 총선에서 일부 정당이 장애인을 후보로 올리긴 했지만 당선권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실상 장애인을 배제시킨 것이다. 국내 등록 장애인은 250만 명이 넘는다. 등록 않은 이들까지 포함하면 40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등록 장애인만 해도 인구의 5%인데 한 석도 배정받지 못했으니 장애인계가 충격을 받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런 상황이 자업자득이라는 얘기가 있긴 하다. 과거 장애인계를 대표한다고 하는 특정 단체의 수장이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사례가 잦았다. ‘금배지’가 약속된 그 자리를 놓고 편 가르기가 횡행했으니 정치권으로부터 무시를 당했다는 것이다. 또한 이전에 국회에 진출했던 인물들이 눈에 띄는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무엇보다 이번 총선은 민의(民意)를 무시했다. 국민 전체가 안중에 없는데 그중 소수인 장애인들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을 것이다.
기자는 지난해 미국의 특수체육 권위자인 테리 리조 샌버너디노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미국에 비해 한국의 장애인체육 정책은 우수하다. 부러운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시스템만 그렇다. 동아일보가 16일 보도한 ‘갈 곳 없는 장애학생’ 제하의 기사에는 서울의 한 중학교 안에 발달장애인을 위한 직업훈련시설을 세우려 하자 지역 주민들이 반대했다는 내용이 있다. 그들이 내건 플래카드에는 ‘어린 학생들과 발달장애인은 공존할 수 없다!!’라고 쓰여 있다. “차라리 쓰레기장이 들어오는 것이 낫다”라고 한 주민까지 있다고 했다.
장애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 수준이 아직은 이렇다. 누구나 잠재적 장애인이라는 사실은 깨닫지 못한 채 장애인을 격리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 게다가 이제는 장애인을 대표해 줄 사람조차 없게 됐다. 대한장애인체육회 관계자는 “국회는 문턱이 아주 높은 곳이다. 이전까지는 장애인 비례대표라는 ‘기댈 언덕’이 있었지만 이제는 ‘절벽’이 됐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장애인들에게 2016년 4월은 ‘잔인한 달’로 기억될 것이다. 내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w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