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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욱 교수의 과학에세이]해가 두 번 뜨면 1년이 지나는 별에 산다면

입력 | 2016-04-19 03:00:00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은 저마다 시계를 갖고 있다. 자전과 공전 주기가 제각각이지만 자연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김상욱 부산대 물리교육과 교수

완연한 봄이다. 아침 햇살이 따사롭다. 아침 햇살은 지구로부터 1억5000만 km 떨어진 태양의 표면에서 출발한다. 빛의 속도로 8분 정도 걸리는 거리다. 이 빛은 1000만 도에 달하는 뜨거운 태양의 중심에서 만들어졌다. 수소원자들이 융합하여 헬륨원자가 되는 과정에서 남은 부산물이다.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상대성이론, 핵물리, 양자역학의 지식이 필요하다. 이 과정을 지구상에서 재현하려는 것이 미래 에너지원인 핵융합발전이다. 북한이 1월 6일 성공했다고 주장한 수소폭탄의 원리이기도 하다.

매일 반복되는 아침은 지구의 자전 때문이다. 지구의 1일, 즉 24시간을 기준으로 수성의 자전주기는 59일이다. 수성에서 하루의 3분의 1을 일한다면 꼬박 20일 일해야 퇴근할 수 있다. 반면 목성의 하루는 0.41일로 지구의 절반도 안 된다. 3시간 정도만 일하면 퇴근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목성으로 이주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목성의 공전주기는 12년이라서 연봉을 받으려면 12년을 기다려야 한다. 불과 88일 만에 태양을 한 바퀴 도는 수성에서는 수성의 자전을 기준으로 이틀이 지나기도 전에 연봉을 받게 된다. 그렇다고 수성으로 이주한다면 이것은 어리석다 못해 미친 짓이다. 수성은 낮의 온도가 400도까지 올라가기 때문이다. 지구에서 느끼는 태양의 모습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완연한 봄의 아침 공기는 싱그럽다. 공기는 주로 질소와 산소로 되어 있다. 우리는 산소 없이는 살 수 없다. 하지만 산소는 독(毒)이다. 반응성이 매우 높은 원자이기 때문이다. 당신 주변에 보이는 대부분의 물질은 표면이 산소로 뒤덮여 있다고 보면 된다. 산소가 어디든 닿으면 바로 반응하여 결합한다. 산화(酸化)라 불리는 과정이다. 철이 붉게 부식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외계 생명체가 지구에 오면 산소의 독성 때문에 바로 죽을지 모른다.

지구에 생명이 탄생한 35억 년 전쯤에는 산소가 거의 없었다. 그러다 광합성을 하는 시아노박테리아가 나타나면서 산소가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광합성의 목적은 에너지를 만드는 거다. 산소는 그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 쓰레기에 불과하다. 산소가 지구에 축적되자 산소에 적응하지 못한 생물은 대부분 멸종했다. 산소로 호흡하는 생물은 섭취한 음식을 산소로 태워 에너지를 얻는다. 당신도 이런 생물의 하나다.

우리 몸은 헤모글로빈이라 불리는 특별 호송차량으로 산소를 운반한다. 다른 물질들은 그냥 혈액에 섞여 이동한다. 헤모글로빈에는 철 원자가 들어 있는데, 이것이 산화하면 붉은색을 띤다. 피가 붉은 이유다. 헤모글로빈에는 산소분자, 즉 두 개의 산소원자가 들어갈 공간이 있다. 이 공간은 정교하게 만들어져 산소 이외의 분자는 들어갈 수 없다. 산소 분자와 비슷하게 생긴 일산화탄소(CO)만이 여기에 간신히 들어갈 수 있다. 연탄가스를 마시면 죽는 이유다. 실수로 산소가 호송차량을 벗어나 몸 안을 돌아다닐 수 있는데, 그 결과가 노화(老化)다. 당신이 늙는 이유는 숨을 쉬기 때문이다. 싱그러운 아침 공기를 호흡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 아니다.

완연한 봄에는 어딘가 마음이 싱숭생숭해진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는데 내 짝은 어디에 있는 걸까. 글쎄, 우주에서 보면 이것은 착각일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태양계 행성의 하나다. 만약 지구가 모래 알갱이 크기라면 태양은 지구에서 6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오렌지다. 태양계의 마지막 행성인 해왕성은 태양에서 180m 거리에 있게 된다. 태양이 서울에 있다면 가장 가까운 별 알파센타우리는 대만 정도에 위치하는 셈이 되는데, 해왕성에서 여기까지 거의 아무것도 없는 진공이다. 결국 동아시아 전체에 모래 알갱이 몇 개와 오렌지 하나 말고 아무것도 없다고 보면 된다. 모래 알갱이 하나가 지구다.

우주가 너무 광활하고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정상적인 방법으로 우주를 여행할 방법은 없다. 우리 은하를 벗어나려면 항공기의 속도로 가도 1000억 년 걸린다. 그러다 보니 영화 ‘인터스텔라’에서는 우주여행을 위해 ‘웜홀’을 이용한다. 텅 빈 우주에서 물질을 만나는 것은 그 자체로 큰 행운이다. 더구나 그 물질이 생명체라면 기적이다. 아직 우리는 지구 밖에서 생명체를 발견한 적이 없다. 하물며 그 생명체가 인간이라면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며 기뻐해야 마땅하다. 그 넓은 우주에서 인간을 만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다.

이쯤 되면 세상이 이상하다고 느껴질 법하다. 하지만 세상에 이상한 것은 없다. 세상은 자연법칙에 따라 행동할 뿐이다. 만약 자연법칙을 거스르는 것이 이상한 일이라면 그런 일은 아예 일어날 수 없다.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지만 이상한 것도 없다. 어째, 주변이 좀 달라 보이지 않는가.

김상욱 부산대 물리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