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당에 꽃이 피네 민주당에 비가 온다 ‘4·19와 대중문화’ 학술대회
1960년 대통령 선거를 한 달 앞둔 2월 15일 민주당 대통령 후보 조병옥 박사가 미국에서 급서하자 조 박사를 애도하는 노래가 퍼지고 있다며 동아일보가 1960년 3월 9일자에 보도한 내용이다.
대중가요의 히트가 유력 야당 대통령 후보의 죽음과 관계된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다시 못 올 그 날짜를 믿어야 옳으냐/속는 줄을 알면서도 속아야 옳으냐/죄도 많은 청춘이냐 비 내리는 호남선에/떠나가는 열차마다 원수와 같더란다.” 1956년 발표된 ‘비 내리는 호남선’(손로원 작사, 박춘석 작곡, 손인호 노래)이다. 그해 5월 신익희 민주당 후보는 대통령 선거 투표 열흘을 앞두고 호남 지역 유세를 위해 이동하던 중 열차에서 쓰러져 급서했다. 이 노래는 신 후보의 죽음을 모티브로 했다는 풍문이 돌면서 널리 사랑받았다.
하지만 이 교수는 4·19혁명 뒤 대중음악계의 대응이 미진했다고 봤다. ‘4·19와 유정천리’ ‘사월의 깃발’을 비롯해 10여 곡이 발표됐지만 상투적 표현에 그쳤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 노래들은 혁명의 의미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했고, 이후 혁명 자체가 미완으로 남으면서 노래 또한 안착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한편 함충범 일본 나고야대 객원연구원도 ‘4·19혁명이 영화계에 미친 영향 고찰’을 냈다. 그에 따르면 4·19혁명 뒤 민간 심의기구가 관청의 영화 검열을 대체했고, 당대의 현실을 진지하게 묘사한 수작 ‘오발탄’도 1961년 4월 개봉됐다. 함 연구원은 “영화법 도입, 국립영화제작소 설치, 비정부 기관의 영화 심의,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운동 등 한국 영화계의 굵직한 이슈들은 모두 4·19혁명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