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 떨어진 대형해운사, 아시아 역내 노선 확대
지금까지 중견 해운사들이 주 무대로 삼고 있던 아시아 역내 노선에 대형 해운사들이 잇달아 진출하고 있다. 주로 장거리 노선을 운항하던 대형 해운사들이 ‘생존을 위해’ 단거리 노선으로 밀려 온 것이어서 대형 해운사의 위기가 중견 해운사에까지 파급된 셈이다.
19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 대표 해운사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잇달아 아시아 노선을 강화하고 있다. 한진해운은 1일부터 한국과 북베트남을 연결하는 ‘KH1’ 노선을 신설했다. 또 다음 달 말부터는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미국 서해안 롱비치까지의 운송 기간을 기존 13, 14일에서 11일로 단축한 급행 서비스인 ‘CAX(China America Express)’를 시작하기로 했다. 한진해운 측은 “상반기 남베트남 노선도 개편할 것”이라며 “전자제품, 의류, 신발 등 남베트남에서 주로 생산되는 품목들의 특성과 고객들의 선호도를 반영한 전반적인 노선 개편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대상선은 3일부터 러시아의 FESCO, 프랑스의 CMA-CGM과 함께 중국-한국-러시아를 잇는 컨테이너 서비스를 개시했다. 그간 현대상선은 부산과 러시아 보스토치니를 잇는 2개 노선을 운영해 왔는데, 구간을 중중국과 남중국까지 늘린 것이다.
이러다 보니 주로 아시아 단거리 노선에서 안정적으로 이익을 내오던 고려해운, 장금상선, 흥아해운 등 중견 해운사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지난해 장금상선이 처음 매출 1조 원을 돌파했다. 흥아해운은 영업이익이 2014년에 비해 14.4%나 증가하는 등 선전했다. 하지만 대형 해운사들과 경쟁해야 하는 올해는 실적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해운업계 불황 속에서도 그동안 중견 해운사들이 선전했던 것은 △주 무대인 아시아의 물동량이 많고 △해운사들의 적재 공간도 적은 편이어서 운임 하락폭이 작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운임지수인 중국발컨테이너운임지수(CCFI) 종합지수는 2014년 연평균 1086에서 지난주 640으로 41.1% 떨어졌다. 반면 CCFI 동남아지수는 같은 기간 839에서 617로 26.5%만 떨어졌다.
단거리 노선을 두고 국내 해운사들끼리 경쟁하는 구도가 되면서 상대적으로 덩치가 작은 중견 해운사들은 볼멘소리를 내고 있지만, 생존 기로에 선 대형 해운사들도 급하기는 마찬가지다. 해운업계의 한 관계자는 “해운이야말로 국경이 없는 완전경쟁 업종이라서 국내 대형 해운사가 아니라도 외국 해운사들이 들어올 것”이라며 “극심한 경쟁에 처해 있는 것은 전 세계 모든 해운사들의 공통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회의 현장에서 “해운사 구조조정이 예정대로 되지 않으면 정부가 행동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제일 걱정되는 회사는 현대상선”이라고 발언한 데 대해 해운업계는 크게 긴장하는 분위기다. ‘콕 집어’ 지목당한 현대상선은 물론이고 한진해운도 자율협약이나 법정관리 등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 대상이 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용선료(배를 빌리는 가격) 인하 협상에서 시간을 끌고 있는 해외 선주들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