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몇 년은 물론 몇 개월을 쉰다는 것, 아니 나에게 보장된 휴가를 한 주 붙여서 떠나는 것에 대해서조차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되면 쉬는 꿈을 꿀 수는 있지만, 결국 쉬지는 못한다. 쉰다는 것을 ‘논다’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쉰다는 것은 세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과거 돌아보기이다. 어린 시절 가졌던 꿈이나 능력은 무엇이었는지, 지금까지 직장생활은 돈을 버는 것(money maker) 외에 내 삶에 어떤 의미를 만들어 내고 있는지(meaning maker)에 대해 돌아보는 기회다. 둘째, 현재의 나를 거리 띄워 보기이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어디인지,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아니 방향성조차 없이 바쁜 일상을 지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는 작업이다. 셋째, 미래를 미리 보기이다. 10년 뒤의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때 나는 어떤 상태이길 바라는가, 그때의 시점에서 지금을 바라본다면 무슨 아쉬움을 갖고, 무엇을 다행이라고 생각할까.
여기에서 쉰다는 것은 최소 6개월 이상 쉬는 것을 말한다. 만약 당신이 6개월에서 1년 정도를 쉰다면 많은 사람이 꿈꾸듯 그것이 국내이든 국외이든 낯선 환경을 찾아 떠나는 여행, 혹은 살아보기를 권하고 싶다. 낯선 장소, 낯선 사람들 속에서 익숙했던 나의 삶을 비로소 낯설게 바라보는 여유를 갖게 된다.
만약 누군가 3년 동안 직장을 떠나 미래를 위한 공부를 하고 싶다면 나는 덴마크의 오르후스에 위치한 카오스파일럿(Kaospilot)이라는 디자인 학교를 추천할 것이다. 캠퍼스와 정규학위도 없이 항구에 덜렁 있는 6층짜리 건물의 일부를 사용하는 이 학교를 미국의 경영잡지 ‘비즈니스위크’는 사회 변화를 가르치는 유망한 디자인 사고 기반의 학교로 꼽았다. 올 2월 이곳에 머물며 이 학교의 교육 방식에 대한 워크숍에 3일 동안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이 학교는 매년 21세 이상 35명 내외의 학생을 선발하여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실제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이론은 현장에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것만 가르친다. 이곳 졸업생 중 96%가 취업을 하며, 3명 중 1명은 창업을 한다. 교실은 벤처회사의 사무실과 흡사하며, 철저하게 학생들의 참여를 중심으로 교육이 진행된다. 혼돈을 뜻하는 카오스와 실험을 뜻하는 파일럿을 합친 이 학교의 이름은 그 정신을 잘 보여 준다.
많은 사람이 타의에 의해 조직에서 밀려나 쉴 수밖에 없을 때에야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둘러보고, 막막한 미래를 걱정한다. 그때는 현실적으로 무엇을 하기란 힘들다. 쉬는 것도 타이밍이 중요하다. 30대에는 1년을 쉬거나 3년을 공부해도 돌아와 새로 무엇인가를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 40대 중반만 지나도 쉬거나 변화를 추구하기란 현실적으로 힘들다. 1년을 쉬기 위해서는 적어도 1년간의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 위험을 감행한다는 뜻의 리스크 테이킹(risk taking) 앞에는 한 단어가 더 붙어야 한다. 계산된(calculated)이란 단어 말이다. 쉬는 데에도 계산이 필요하다.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