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수 경제부 차장
동북아 전략연구기관인 니어재단을 맡고 있는 정덕구 이사장(68)은 재무관료 출신으로 외환위기 당시인 1998∼2000년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차관과 산업자원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지냈다. 산자부 장관 시절 조립산업에서 부품소재산업 위주로 국내 기업들의 구조 변화를 진두지휘했다. 기업들이 핵심 부품들을 외국에서 수입하는 바람에 수출을 통해 얻은 외화가 고스란히 빠져나가면서 경상수지 적자가 만성화됐다는 판단에서 내린 조치였다. 1조 원대의 정책 보조금을 부품소재산업 육성에 쏟아부은 결과 자동차와 전자제품 등 부품의 질이 향상돼 완제품 품질 개선으로 이어졌다. 제대로 된 산업 구조조정은 이때가 마지막이었다. 이후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산업구조조정을 외면했다. 그 결과, ‘한국팀’에는 100kg이 넘어 발이 느린 헤비급 선수들만 즐비하게 됐다.
관료 후배들에게 ‘꼬장꼬장하고 독한 선배’로 기억되는 그는 예상대로 거침이 없었다. 18일 만나 현 정부의 산업 구조조정 성공 가능성에 대해 묻자 “가망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현 경제정책팀 구성은 ‘미스 캐스팅’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럼 왜 이런 인사를 했을까. “왜냐고? 외과의사는 개성이 강해 고분고분하지 않거든. 박근혜 대통령이 말 잘 듣는 내과의사만 좋아하다 보니 이 지경이 됐어.”
그럼 메스를 잘 쓰는 외과의사들을 찾아 수술을 시키면 성공할 수 있을까. 그는 “관건은 야당”이라고 말했다. “야당은 노조와 같은 이익집단을 보호해야 하잖아. 구조조정에 동의하지 않을 게 분명하지. 하지만 야당도 자신들의 이익만 도모하다 보면 ‘승자의 저주’에 빠질 거야. 경제 망가지게 놔두면 내년 대선 때 국민에게 심판받겠지.”
지금 한국 산업은 바람 앞에 촛불과 같은 신세다. 철강·석유화학 업계는 과잉 공급과 중국 업체들의 파상공세로 코너에 몰렸다. 조선·해운 업계는 글로벌 경기침체로 침몰 직전이다. 상장사 10개 중 3개는 돈 벌어 이자도 못 갚는 ‘좀비기업’ 신세다. 기업 구조조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야 할 산업은행은 지난해 조선·해운 부실을 떠안아 2조 원 가까운 적자가 났다.
그럼에도 정부는 단호하게 칼을 빼들지 못하고 있다. 구조조정을 하면 직장을 잃는 사람들이 대규모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일자리가 없어서 난리인데 구조조정은 정권을 걸어야 하는 작업이다. 또 정부의 인위적인 기업 구조조정이 시장경제를 해칠 수 있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정 전 장관은 관료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하나 있다고 했다. “리더도 중요하지만 대한민국 과장, 국장 한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게 여러 가지가 있어. 지금이 바로 죽을 각오로 일을 해야 할 때야.”
김상수 경제부 차장 s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