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 명정전(明政殿).
명정전 처마 끝에
새들이 깃을 들이고 살았는데
새들이 조선 팔도
양지며 그늘까지 골고루 날면서
햇볕은 따사로우며
우물에 물은 잘 고이는지
백성들은 베갯머리 편히
잠들고 깨어나는지
살피고 돌아와
어전에 세세히 아뢰곤 하여서
눈 밝고 귀 맑은 임금께선
명정전 처마 끝에 걸리는
하늘만 바라보고도
흙 위에 떨어진 마른 씨앗들이
초록빛 싹들을 불러
햇살 속에 잘 밀어 올리는지 어떤지
산골짝 마을의 어느 백성이 아픈지 어떤지까지
소상히 헤아리고 계셨다……
서울의 밤을 낮처럼 밝히던 창경궁 벚꽃이 다 지고 있다. 나라 빼앗은 일제가 조선왕조의 궁궐 안에 사자 코끼리 원숭이 등의 동물 우리를 짓고 이름도 ‘창경원’으로 낮췄던 그 역사 지우기의 아픈 기억이 아직도 아물지 않은 고궁. 창경궁 명정전(국보 226호)이 오늘은 벚꽃 산화의 뜰에서 백성의 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
새해 아침 신하들이 임금께 하례를 올리는 일, 나라의 큰 행사를 치르며 외국의 사신 맞이하는 영빈관으로 쓰기 위해 1484년(성종 15년)에 지었는데 임진왜란 때 병화로 소실, 1616년(광해군 8년)에 복원한 것이다.
집 안의 보좌는 연꽃 모양 난간을 두르고 중앙 위쪽에 어탑(御榻·임금이 앉는 상탑)을 놓고 뒷면은 해와 달 십장생이 낙원을 이루는 일월오봉병(日月五峰屛)을 장식하여 조선조 전기의 건축양식과 궁실의 품격과 아름다움을 한결 높인 문화재이다.
시인은 ‘눈 밝고 귀 맑은 임금께선/명정전 처마 끝에 걸리는/하늘만 바라보고도… 산골짝 마을의 어느 백성이 아픈지 어떤지까지/소상히 헤아리고 계셨다’고 하니 그 임금을 모셨던 백성들이 어찌 부럽지 아니하랴.
이근배 시인·신성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