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표 오피니언팀장
수덕여관 하면 흔히 고암 이응노를 떠올린다. 이응노가 1945년 이 여관을 매입했고, 동백림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뒤 이곳에서 요양을 했으며 그때 문자추상 석각을 남겼다는 이야기. 그러나 이응노보다 더 절절한 사연으로 얽혀 있는 사람이 있다.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이다.
나혜석이 수덕여관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37년 말 수덕사로 일엽 스님을 찾아가면서. 당시는 나혜석이 ‘이혼고백서’ 발표 등으로 인해 가부장적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심신이 피폐해질 때였다. 나혜석과 동갑내기 일엽은 신여성의 선두에서 여성해방과 자유연애를 외쳤으나 1933년 출가해 수덕사에서 수행을 하고 있었다.
최근 나혜석 평전을 읽었다. 선구적이었기에 오히려 비극과 파탄에 이른 나혜석의 삶. 책장을 넘길수록 애처로움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미술평론가 이구열 선생은 이렇게 평했다.
“조선사회의 도덕적 형벌은 이토록 가혹하였다. 이 땅의 근대 문화와 새로운 사상에 그토록 많은 공헌을 남긴 선각의 여성이 단지 한때의 과오로 인해 그처럼 가혹한 비극의 심연에 처넣어져 모진 종말의 길을 가게 될 때, 지난날 그녀가 항시 사랑했던 조국 조선은 일제로부터 해방과 독립이 이루어졌다. 3·1운동에도 가담했고 만주에선 압록강을 넘나들던 항일 독립투사들의 내왕을 도왔던 나혜석이 그 감격을 어디서 혼자라도 외치기나 했을까.”
지난해 말 나혜석의 막내며느리가 나혜석의 ‘자화상’과 ‘김우영 초상’을 고향인 수원시(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에 기증했다. 막내아들인 김건 전 한국은행 총재의 유지(遺志)에 따른 것이다. 생전에 나혜석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 막내아들이었다. 그 기증은 어쩌면 나혜석과 막내아들, 나혜석과 세상의 화해일지도 모른다.
몇 년 전부터 나혜석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그에게 드리운 편견을 걷어내려는 움직임도 많다. 수원에는 나혜석 거리를 조성했고 집터도 단장해 놓았다.
이광표 오피니언팀장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