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이 생전에 간곡하게 부탁하셨어요. 나 없으면 상심하여 몸 상할까 걱정이다. 네가 자주 들락거리며 네 시누이 좀 살펴줘라.”
5년 전 봄날, 엄마 보내드리고 돌아오면서 새언니가 전한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시어머님이 그러셨다고 한들 서로 바쁘게 사는 마당에 그 말씀 받들지 않으면 누가 뭐랄까. 그런데 고지식한 새언니는 그 이후 꼬박꼬박 한 주에 한 번꼴로 식구가 모두 외출하여 비어 있기 일쑤인 우리 집에 우렁각시처럼 다녀간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소리 없이 나의 필요한 부분을 채워주는 누군가를 꿈꾼다. 그러나 내가 먼저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 주지 않는다면, 자신의 몸을 태워 재로 남는 뜨거운 헌신이 없이는 결코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안도현 시인의 물음은 뜨끔하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우렁각시가 다녀간 날, 시인처럼 나도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제까지 나는 누군가의 가슴을 뜨겁게 해준 적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누군가에게 뜨거운 사람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다면 한 장의 연탄보다 나은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의 엄마는 한 줌의 재가 되어 떠나셨지만 한평생 뜨겁게 정성을 다했으므로 그 온기가 지금까지 남아 나의 가슴을 따듯하게 덥혀 주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렇다. 사랑이 사랑을 낳는다. 내가 먼저 사랑이 되어야 한다.
윤세영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