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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의 매혹]광기에 가까운 사랑의 열정 오롯이 전달

입력 | 2016-04-22 03:00:00

화제의 번역본 2題/열린책들 ‘소네트집’




《셰익스피어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의 작품은 지금도 필독서로 꼽히며, 끊임없이 무대에 올려지고, 새롭게 해석된다. 400주기를 맞아 셰익스피어의 작품과 관련 책들을 살펴보면서 이 위대한 작가가 전하는문학의 아름다움을 경험해 보는 건 어떨까.》

 

‘대리석도, 군주의 도금한 기념비도./ 이 막강한 시보다 오래 가지 못하리라./더러운 시간의 때 닦아내지 않은 묘석보다/그대 이 시 속에서 더 밝게 빛나게 되리라.(…) 죽음과 모든 것을 망각으로 떨치는 적에 맞서/그대 걸어가리라, 이 세상 끝나는 심판의 날까지.’(소네트 55번)

셰익스피어 희곡의 유려하고 깊이 있는 대사에서 짐작할 수 있듯, 셰익스피어는 시인이기도 했다. 영어로 쓰인 가장 아름다운 사랑 노래이자 ‘셰익스피어의 천재성을 완벽하게 발휘한 작품’(헤럴드 블룸 예일대 석좌교수)이 셰익스피어의 시집인 ‘소네트집’(열린책들)이다.

‘소네트집’은 전체 154편의 시편으로 이뤄진 연작시집이다. 소네트는 14행으로 구성된 ‘작은 노래’ 즉 소곡(小曲)을 의미한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는 ‘W.H’라는 인물, 귀족 청년, 검은 여인 등에게 바치는 사랑의 기록으로 읽힌다. 1600년 즈음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이 시편들은 미적 성취 외에도 다른 작가의 소네트와도 차별화된다. 기존 소네트가 대개 통속적인 연애 이야기를 다뤘다면,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예술과 시간, 영적 세계까지 아울렀다.

무엇보다 시작(詩作)에 대한 셰익스피어의 신념을 확인할 수 있다. 셰익스피어에게 시는 위선과 부정을 닦아내고 시간의 마모를 견딜 수 있는 것이다.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젊은이여, 그 청춘 시들 때/그대에게서 나의 시 그대의 진실 뽑아내리라’ 라고 노래한 소네트 54번, ‘그대 부활하는 심판의 날까지 그대 이곳에 살아/연인들의 눈 속에 머무시기를’이라고 말하는 소네트 55번 등이 그렇다.

번역과 해설을 맡은 한국외국어대 박우수 교수는 “기존 언어를 변주해 다소 진부해진 소네트 형식의 연애시에 ‘강한 매력’을 불어넣었다”면서 “‘소네트집’은 셰익스피어의 기지에 찬 상상력이 만들어낸 언어의 잔치”라고 말했다.

‘셰익스피어 소네트’는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창단한 극단 ‘베를린 앙상블’의 레퍼토리로도 유명하다. 소네트 중 25편을 무대화한 것으로 지난해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선보였다. 동아일보 DB

성관계와 동성애에 대한 암시가 읽히고 부도덕적으로 보이는 내용도 있어 당대에 큰 인기를 모으지 못했다. 그러나 관습을 뛰어넘는 과감함은 셰익스피어 소네트가 이후 오래도록 사랑받는 계기가 됐다. 소네트 147편은 격렬한 사랑에 미혹된 시적 자아의 모습을 보여준다.

‘내 사랑 열병과 같아/병 더욱 키울 것을 늘 염원하며/변덕스러운 환자의 식욕 충족시키기 위해/병 연장시키는 것 먹고 삽니다. (…) 이제 이성의 보살핌 벗어났으니 나는/가망 없어 더욱 안달하며 광란합니다./미친 사람처럼 나의 생각과 말은/진실에서 벗어나 제각각입니다.’

17세기 영어에서 현대의 우리말로 옮겨진 간극은 있을지언정, 광기에 가까운 사랑의 열정은 오롯이 전달된다. 셰익스피어 소네트라는 ‘정보’만 없다면 요즘 시인이 쓴 것처럼 보인다. 충실한 번역이 읽는 맛을 돋운다.

‘맥베스’ ‘오셀로’ 등 셰익스피어 4대 비극(열린책들)과 함께 읽으면 언어의 시너지가 더욱 높아질 법하다. 인간의 마음에 담긴 사랑의 열망과 고통의 치열함이 생생하게 와닿음은 물론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