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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캠퍼스 도로는 사유지”… 전체사고의 37% 차지해도 방치

입력 | 2016-04-22 03:00:00

[교통사고 사망자 2000명 줄이자]<8> 안전사각 ‘도로 외 구역’




《 아파트는 한국 도시의 상징이다. 전체 국토의 17%에 불과한 도시에 인구의 92%가 살다보니 아파트처럼 한꺼번에 많은 사람을 수용하는 건물은 갈수록 늘고 있다. 건물이 들어서고 사람들이 모이면 교통량도 증가한다. 아파트 단지 내 도로에는 차량이 쉴 새 없이 오가고 대형 건물 주차장에는 빈자리가 없다. 일반 도로의 교통 상황과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이곳에서 교통사고가 나도 공식 통계에 포함되지 않는다. 경찰이 사고를 조사할 의무도 없다. 도로교통법상 ‘도로 외 구역’이기 때문이다. 도로인 것 같지만 도로가 아닌 것이다. 도로 외 구역이 교통사고의 ‘사각지대’로 불리는 이유다. 교통 선진국들은 도로 외 구역도 도로와 같은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내 집 앞’에서 발생하는 어처구니없는 교통사고를 막기 위해 최소한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




20일 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 마을버스 한 대가 지나가고 있다(맨위쪽 사진). 관악구 서울대 캠퍼스 안에도 일반 시내버스가 운행 중이다.(맨아래쪽 사진)두 곳 모두 일반 도로의 교통상황과 차이가 없지만 현행법상 ‘도로 외 구역’이라 체계적인 안전대책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 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올 2월 충북 청주시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여덟 살 남자아이가 교통사고로 숨졌다. 인근 태권도학원의 12인승 통학차량이 미처 아이를 보지 못한 것이다. 지난해 12월 광주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도 일곱 살 남자아이가 어린이집 통학차량에 치여 숨졌다.

아파트 단지 내 교통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피해자는 대부분 어린이와 노인이다. 아파트 단지가 갈수록 대형화하면서 사고 위험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대형마트와 대학 캠퍼스도 차량 통행이 늘어나면서 대형 사고에 노출돼 있다. 그러나 이들 지역은 모두 도로 외 구역이다. 설계나 건축허가 단계에서 일부 심의를 받지만 완공 후 제도적인 교통안전 관리는 전무하다.

○ 교통사고 발생 가장 많은 ‘도로 외 구역’

일반도로와 도로 외 구역 중 어디서 교통사고가 더 많이 발생할까. 언뜻 생각하면 일반도로가 더 많을 것 같지만 결과는 정반대다.

2014년 발생한 전체 교통사고 중 도로 외 구역에서 발생한 사고는 41만9435건, 전체의 37.1%였다. 교통사고 발생 장소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다음은 이면도로(29.8%)였고 지방도로(19.9%), 특별·광역시도(9.2%), 국도(2.8%), 고속도로(1.2%) 순이었다.

도로 외 구역의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와 부상자는 각각 103명과 66만4670명이었다. 부상자 수 역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37.1%)이 가장 높았다. 임채홍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도로교통법상 도로 외 구역은 음주·약물 운전으로 인한 사고일 때만 예외적으로 경찰이 조사를 하기 때문에 실제로 이곳에서 발생하는 교통사고는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도로 외 구역의 불안한 교통안전 실태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가 서울 및 경기지역 아파트 단지와 대형마트, 대학 등 15곳을 조사한 결과(2014년) 15곳 모두 주차장 진·출입로가 좁아 차량의 회전반경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았다. 조명시설 부족 등 여러 문제점이 드러났다.

도로 외 구역의 시설은 크기와 형태가 제각각이다. 하지만 이를 바로잡을 마땅한 규정이 없다. 주차장은 도로 구조 및 시설 기준에 관한 규칙과 주택법 등에 시설 관련 규정이 있다. 그러나 진·출입로 등 주차장 내 도로의 구조 및 안전시설 기준은 포함돼 있지 않다.

일반도로의 경우 교통안전법에 따라 준공 전에 공인기관으로부터 교통안전평가를 받아야 한다. 또 일정 규모 이상의 교통사고가 발생하거나 도로 시설 노후 등으로 중대한 위험 요인이 나타나면 특별 교통안전진단을 받고 시설 개선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 하지만 도로 외 구역은 건축허가 단계에서 교통안전진단 의무가 없다. 특별 교통안전진단 대상도 아니다. 특별 교통안전진단의 기준이 되는 공식 교통사고 통계가 없기 때문이다. 임 연구원은 “2014년 교통안전공단에서 아파트 단지를 대상으로 교통안전관리 매뉴얼을 만든 것이 국내 도로 외 구역의 유일한 안전관리 지침”이라며 “하지만 법적 근거가 없는 지침이라 지속성을 보장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 교통사고 때 경찰 조사 의무조차 없어


도로교통법상 도로 외 구역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해도 경찰 신고와 사고 조사는 의무사항이 아니다. 도로 외 구역이 사유지 내 도로이기 때문에 도로교통법의 적용을 받는 ‘공로(公路)’가 아니라는 이유. 하지만 도로 외 구역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다. 대형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고층 건물이 늘어나면서 사람들은 도로 외 구역도 도로와 비슷하게 여기고 있다.

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 단지 안에는 마을버스 1개 노선이 지난다. 이 단지에 사는 주민 박모 씨(65)는 “사유지에 건설한 아파트 단지지만 불특정 다수가 사는 곳에서 함께 쓰는 도로를 사적 도로로만 보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며 “정부에서 도로 외 구역도 일반도로에 준해 관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관악구 서울대 캠퍼스 안에도 총 3개 노선의 시내버스가 다닌다. 서울대 행정대학원생 최모 씨(34)는 “캠퍼스 내 도로도 본질적으로 일반도로와 차이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야간에는 과속 등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아 사고 위험이 크다”고 말했다.

임 연구원은 “정부가 설계 단계부터 도로 외 구역의 시설물별 안전관리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며 “사고 신고와 경찰의 사고 조사도 의무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안전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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