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사망자 2000명 줄이자]<8> 안전사각 ‘도로 외 구역’
《 아파트는 한국 도시의 상징이다. 전체 국토의 17%에 불과한 도시에 인구의 92%가 살다보니 아파트처럼 한꺼번에 많은 사람을 수용하는 건물은 갈수록 늘고 있다. 건물이 들어서고 사람들이 모이면 교통량도 증가한다. 아파트 단지 내 도로에는 차량이 쉴 새 없이 오가고 대형 건물 주차장에는 빈자리가 없다. 일반 도로의 교통 상황과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이곳에서 교통사고가 나도 공식 통계에 포함되지 않는다. 경찰이 사고를 조사할 의무도 없다. 도로교통법상 ‘도로 외 구역’이기 때문이다. 도로인 것 같지만 도로가 아닌 것이다. 도로 외 구역이 교통사고의 ‘사각지대’로 불리는 이유다. 교통 선진국들은 도로 외 구역도 도로와 같은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내 집 앞’에서 발생하는 어처구니없는 교통사고를 막기 위해 최소한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
20일 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 마을버스 한 대가 지나가고 있다(맨위쪽 사진). 관악구 서울대 캠퍼스 안에도 일반 시내버스가 운행 중이다.(맨아래쪽 사진)두 곳 모두 일반 도로의 교통상황과 차이가 없지만 현행법상 ‘도로 외 구역’이라 체계적인 안전대책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 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 교통사고 발생 가장 많은 ‘도로 외 구역’
일반도로와 도로 외 구역 중 어디서 교통사고가 더 많이 발생할까. 언뜻 생각하면 일반도로가 더 많을 것 같지만 결과는 정반대다.
2014년 발생한 전체 교통사고 중 도로 외 구역에서 발생한 사고는 41만9435건, 전체의 37.1%였다. 교통사고 발생 장소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다음은 이면도로(29.8%)였고 지방도로(19.9%), 특별·광역시도(9.2%), 국도(2.8%), 고속도로(1.2%) 순이었다.
도로 외 구역의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와 부상자는 각각 103명과 66만4670명이었다. 부상자 수 역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37.1%)이 가장 높았다. 임채홍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도로교통법상 도로 외 구역은 음주·약물 운전으로 인한 사고일 때만 예외적으로 경찰이 조사를 하기 때문에 실제로 이곳에서 발생하는 교통사고는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로 외 구역의 시설은 크기와 형태가 제각각이다. 하지만 이를 바로잡을 마땅한 규정이 없다. 주차장은 도로 구조 및 시설 기준에 관한 규칙과 주택법 등에 시설 관련 규정이 있다. 그러나 진·출입로 등 주차장 내 도로의 구조 및 안전시설 기준은 포함돼 있지 않다.
일반도로의 경우 교통안전법에 따라 준공 전에 공인기관으로부터 교통안전평가를 받아야 한다. 또 일정 규모 이상의 교통사고가 발생하거나 도로 시설 노후 등으로 중대한 위험 요인이 나타나면 특별 교통안전진단을 받고 시설 개선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 하지만 도로 외 구역은 건축허가 단계에서 교통안전진단 의무가 없다. 특별 교통안전진단 대상도 아니다. 특별 교통안전진단의 기준이 되는 공식 교통사고 통계가 없기 때문이다. 임 연구원은 “2014년 교통안전공단에서 아파트 단지를 대상으로 교통안전관리 매뉴얼을 만든 것이 국내 도로 외 구역의 유일한 안전관리 지침”이라며 “하지만 법적 근거가 없는 지침이라 지속성을 보장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도로교통법상 도로 외 구역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해도 경찰 신고와 사고 조사는 의무사항이 아니다. 도로 외 구역이 사유지 내 도로이기 때문에 도로교통법의 적용을 받는 ‘공로(公路)’가 아니라는 이유. 하지만 도로 외 구역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다. 대형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고층 건물이 늘어나면서 사람들은 도로 외 구역도 도로와 비슷하게 여기고 있다.
임 연구원은 “정부가 설계 단계부터 도로 외 구역의 시설물별 안전관리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며 “사고 신고와 경찰의 사고 조사도 의무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안전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