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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보미 기자의 야구찜]내 자세가 어때서?… 타격하기 딱 좋은데!

입력 | 2016-04-22 03:00:00

독특한 폼으로 잘나가는 타자들




고개가 바닥에 닿을듯… 이진영(오른쪽)이 LG 소속이었던 2014년 KIA로 이적한 옛 동료 이대형 앞에서 이대형의 독특한 타격 폼을 과장된 몸짓으로 흉내내고 있다. 지난 시즌 이대형이 kt로 이적한 데 이어 올 시즌 이진영이 kt 유니폼을 입으며 두 선수는 다시 젊은 팀을 받치는 기둥으로 함께 활약하게 됐다. MBC스포츠플러스 캡처

임보미 기자

2014년 LG에서 한솥밥을 먹다 KIA로 이적한 이대형(kt)을 놀리던 이진영(kt)의 모습이 TV 중계 화면에 잡힌 적이 있다. 이진영은 고개를 바닥에 닿을 듯 기울이며 이대형의 타격 폼을 따라했다. 하지만 이진영 역시 남부럽지 않은 독특한 타격 폼을 갖고 있다. 상체와 방망이를 수직에 가깝게 꼿꼿이 세우는 폼이다. 상체를 수평에 가깝게 기울이는 이대형의 폼과는 ‘극과 극’이다.

상체-방망이 곧추세운 이진영

두 선수가 지금의 독특한 타격 폼을 갖게 된 사연도 정반대다. 이진영은 고교 시절 폼을 완전히 버렸다. “프로에 오니 빠른 공에 방망이가 밀렸다. 고민이 많던 2002년 하반기에 당시 SK 주루코치였던 신원호 코치님이 방망이를 우산 들듯 잡고 편하게 서 있으라고 조언해 주셨다. 타격코치도 아닌 분이 그럴 정도면 내가 치는 게 얼마나 답답했겠나(웃음). 그때 잡아주신 폼으로 처음 3할을 쳤다. 그게 지금까지 야구를 할 수 있는 큰 힘이 됐다.”

이대형은 고교 시절 몸에 밴 습관을 폼으로 만들었다. 김용달 전 LG 타격코치는 “내가 지도할 당시에는 대형이에게 빠른 발이란 무기가 있으니 타격 포인트를 앞쪽에 둬 살아 나갈 확률을 높이는 데 초점을 뒀다. 이후 다른 지도자들에게 많은 지적을 받았다”고 말했다. 만나는 코치마다 타격 때 두 발이 고정되지 않는 그의 폼을 손보려 애썼고 결과는 혼란이었다.

결국 몸에 맞는 조언만 골라 지금의 폼을 완성했다. 과거보다 상체를 뒤로 뺐고, 두 발의 간격은 넓혔다. 스윙 면적도 넓히고 볼도 더 잘 보기 위한 것이었다. 이대형은 “공을 올려다보면서 스윙 궤도를 컨트롤할 수 있는 폼이 필요했다. 아예 앉아서 쳐보자는 생각을 했고 그게 지금의 타격 폼이 됐다”고 설명했다.

헬멧 위에 배트 올려놓은 정성훈

특이한 타격 폼 하면 빠질 수 없는 선수가 또 있다. LG 정성훈이다. 그는 타석에서 헬멧 위에 방망이를 올려놓고 공을 기다린다. ‘어떻게 그런 폼을 갖게 됐느냐’는 우문에 그는 현답을 내놨다. “공을 치기 전 나에게 가장 편한 자세를 찾은 것이다. 선수마다 키, 몸무게, 호흡 등이 다르기 때문에 준비 자세도 다 다르다. 내 폼이 특이하다고들 하는데 사실 선수 중 같은 폼을 가진 선수는 하나도 없다. 준비 자세는 달라도 결국 공을 방망이 중심에 맞힐 때 모양은 거의 비슷하다.”

이진영도 같은 생각이다. “폼은 체형이나 습관에 따라 다 다르다. 자기가 편한 자세로 치면 된다. 중요한 건 폼보다 중심에 맞히는 것이다. 후배들에게도 연습 때 의미 없이 멀리 치려 하지 말고 공을 정확히 맞히는 데 집중하라고 한다.”

한국의 전통 건축에는 뒤틀리고 휜 나무를 그대로 기둥과 대들보로 쓰는 경우가 많다. 임석재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는 ‘우리 옛 건축과 서양 건축의 만남’이라는 책에서 그 까닭을 이렇게 설명했다. ‘나무가 없어서 그랬을까, 아니면 나무 찾아다니기가 귀찮아서 그랬을까. 둘 다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휜 나무를 기피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휜 나무도 곧은 나무와 조금도 다름없이 기둥으로서의 구조 역할을 거뜬히 해낼 수 있다.’

‘정석’과는 거리가 먼 타격 폼으로 프로의 세계에서 20년 가까이 살아남은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자신만의 타격을 정립하지 않고 선수생활을 오래하기란 불가능하다. 남들 눈에 예쁘지 않아도 확실한 내 것을 찾은 18년 차 정성훈과 이진영, 14년 차 이대형은 그렇게 소속 팀의 든든한 기둥이 됐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