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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신민기]전세난민 뺨때리는 규제

입력 | 2016-04-22 03:00:00


신민기 경제부 기자

서울에서 은행에 다니는 A 씨(31) 부부는 요즘 밤잠을 설친다. 다음 달에 한 달 이상을 남의 집에서 살아야 할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지금 살고 있는 전셋집 주인이 갑자기 들어와 살겠다고 하면서 사달이 벌어졌다. 주변에서 전셋집을 구했지만 2년 새 시세가 1억6000만 원이나 올라 마땅한 물건을 찾지 못했다. 어렵게 구한 집은 이전 세입자와의 계약 기간이 한 달 이상 남아 있었다. 오갈 데가 없어진 부부는 결국 이삿짐을 이사업체에 맡기기로 했다. 잠잘 곳은 ‘에어비앤비’를 통해 살던 곳 주변에서 구해 남은 기간을 지내기로 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전세금에 A 씨와 같은 ‘전세난민’ 얘기는 차고 넘친다. 그래서 그의 얘기는 요즘 뉴스로 여겨지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기자는 그의 넋두리를 외면할 수 없었다. 특히 그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찾았다는 에어비앤비가 관심을 끌었다.

에어비앤비는 수수료를 받고 집이나 남는 방을 여행객에게 빌려줄 수 있도록 연결해 주는 글로벌 공유숙박 업체다. 집주인이 방 사진을 찍어 올리면 이용자가 앱으로 예약을 하고 방을 사용할 수 있다.

문제는 현행 규정에 따를 경우 A 씨가 에어비앤비를 통해 얻은 집은 불법 영업을 하는 곳이라는 점이다. 또 A 씨가 그곳에 거주하는 것도 불법이다. 민박을 하려면 집주인이 집이 있는 지역의 관할 시군구에 숙박업자로 등록해야 한다. 또 서울 등 농어촌이 아닌 곳에서는 외국인만 손님으로 받을 수 있다. 결국 규정대로 하면 한국 국적을 가진 A 씨는 서울에서 에어비앤비를 이용할 수 없다.

기자가 현재 거주하고 있는 세종시도 에어비앤비에 대한 잠재수요가 많은 대표적인 지역 가운데 하나다. 새 아파트가 대량으로 공급되면서 빈방이 꽤 많다. 반면 밤늦게까지 야근을 하거나, 늦어진 회식에 잠잘 곳을 찾지 못해 힘들어하는 공무원이 많다. 업무차 세종시를 찾은 이들도 마찬가지로 고통을 겪는다. 세종시엔 변변한 호텔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과 빈방을 연결해줄 수 있는 시스템이 까다로운 규제 탓에 가동되지 못하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달에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투자를 활성화한다는 명목으로 규제프리존 특별법을 발의했다. 특별법에 따르면 에어비앤비와 같은 공유민박업의 경우 규제프리존 내 도시 지역에서 총면적 230m² 미만의 주택을 이용해 연 120일까지 방을 빌려주는 것이 허용된다. 정부는 관광객 수요가 많은 부산과 강원, 제주 지역부터 시범 도입하고 이후 전국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하지만 이 특별법이 국회라는 관문을 통과할 수 있을지는 현재 미궁에 빠져 있다. 정부는 한 달 남은 19대 국회에 희망을 걸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 국회를 넘기면 언제 법안이 통과될지 감도 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법률안 통과가 실패한다면 억울하게 전세난민이 된 A 씨의 불가피한 선택이 불법행위라는 불명예를 씻기는 당분간 어려워진다. 정치 싸움에 구조조정을 위한 골든타임을 놓치고 한국 경제를 수렁으로 몰아넣은 19대 국회가 조금이나마 오명을 씻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지나가고 있다.
 
신민기 경제부 기자 mink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