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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윤아의 덕후가 되었나? 삼촌 팬의 덕밍아웃~

입력 | 2016-04-22 10:35:00


30대 후반 직장인 A씨. 그를 소개하는 또 하나의 수식어가 있다면 바로 소녀시대 윤아의 ‘덕후*’라는 것이다. 평범했던 싱글남은 어쩌다가 ‘덕질*’을 시작하게 됐을까? 과거 출연 제의도 한사코 고사해온 그가 윤아의 솔로 데뷔를 맞아 소심한 덕밍아웃*을 선언했다.


윤아의 친필 싸인이 담겨있는 소녀시대 앨범.


A씨가 해외 투어를 갈 때마다 모았다는 추억의 아이템들.


[덕후]
마니아 이상의 열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일컫는 일본어 ‘오타쿠’의 한국어 변형태.

[덕질]
광적인 팬 활동을 이르는 신조어.

[버뮤다 삼각지대]
수많은 항공기와 선박들 또는 승무원이 감쪽같이 사라져서 유명해진 곳. 소녀시대 팬들 사이에선 윤아, 유리, 서현 세 명의 매력에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다는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

[덕밍아웃]
자신이 덕후임을 다른 사람에게 밝히는 것. ‘덕후’와 ‘커밍아웃’을 합친 신조어.

내가 윤아의 팬이 된 건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실 그 전까진 걸 그룹을 좋아하지도, 걸 그룹의 노래를 즐겨 듣지도 않던 평범한 30대 남자였다. 학창 시절엔 록 음악 마니아였고, 직장인이 된 후에는 간간이 떠나는 해외여행이 삶의 낙이라 생각하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여행지에서 만난 외국인 친구들이 “소녀시대 노래를 좋아한다”며 말을 건넸다. K-pop의 영향이었다. 나도 그 열기를 직접 체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록 밴드의 해외 콘서트를 찾는 마음으로 이듬해 소녀시대의 일본 아레나 투어 콘서트 티켓을 예매했다. 당시 소녀시대는 ‘GEE’와 ‘소원을 말해봐’로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던 중이었다. 공연의 열기는 정말 뜨거웠다. 전에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전율이 온몸에 느껴졌다. 특히 ‘소원을 말해봐’ 무대는 압권이었다. 센터를 맡는 ‘윤아, 유리, 서현’에게 왜 ‘버뮤다 삼각지대*’라는 별칭이 붙었는지 이유를 단박에 알 것 같았다.

나의 팬질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특히 윤아에 대한 애정은 각별했다. 윤아가 남몰래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를 하는 등 외모만큼이나 아름다운 심성을 가졌다는 걸 알게 됐고, 그 후론 그녀가 웃는 모습이 마냥 좋았다. 윤아의 열애설이 났을 땐 어땠냐고? 마음은 쓰렸지만 상대가 평판이 좋은 남자 연예인이라는 것을 위안 삼으며 그녀의 열애를 응원했다. 어린 나이부터 일에 치여 살던 그녀도 20대 여성으로서 평범한 연애 감정을 가진다는 사실이 오히려 다행스럽기도 했다.

어쨌든 나는 소녀시대의 팬이 된 이후 여느 팬들처럼 ‘광클’로 콘서트 티켓 예매를 했고, 그것을 좀 더 재밌게 즐기기 위해 무대 위 소녀시대의 안무를 하나씩 익히기 시작했다. 새 앨범이 나오면 CD를 1백 장가량 구매해 지인들에게 들어보라며 나눠주기도 했다. 하면 할수록 팬질의 재미는 더욱 커져갔다. 국내에서 열리는 콘서트는 물론이고, 일본, 중국, 대만, 싱가포르, 태국 등 소녀시대의 해외 공연만 줄잡아 30회 이상 보러 다녔다. 해외 투어 한 번에 평균 2백만원 정도를 쓰는 것이니 그리 만만한 금액은 아니지만, 원래 해외여행을 좋아하는 나에겐 하나의 취미 생활이나 마찬가지다.

혹자는 이런 나를 두고 ‘대단한 팬심’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해외 팬들의 열정에 비하면 나는 아직도 부족함을 많이 느낀다. 소녀시대 콘서트 현장에서 여러 차례 마주친 한 일본인 남성 팬은 소녀시대 해외 투어 일정의 90% 정도를 따라다녔다고 했다. 그는 현재 일본에서 공무원으로 재직 중이다.

콘서트를 즐기면서 사귄 외국인 친구들도 많다. 공연이 끝나면 그들과 함께 뒤풀이를 가곤 하는데, ‘소녀시대’라는 취향을 공유해서인지 통하는 점이 유달리 많은 것 같다. 술잔을 부딪치며 식상한 건배사 대신 “지금은 소녀시대! 앞으로도 소녀시대! 영원히 소녀시대!” 하고 외치는 것이 우리들의 의식 중 하나다. 요즘은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해외에 가면 현지에 있는 친구가 가이드를 해준다. 물론 그 친구들이 한국에 올 때면 나도 그들에게 한국의 다양한 문화를 소개해주곤 한다.

아직까지 한국에선 나 같은 삼촌 팬의 덕질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하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나의 덕질은 상당히 건강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나중에 내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게 되면 아이에게도 나의 취미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마지막으로, 이 자리를 빌려 나같이 묵묵히 응원하는 많은 소원(소녀시대 팬덤)들이 있으니 힘내라는 메시지를 윤아에게 전하고 싶다. 앞으로 윤아가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연기자로서도 큰 성공을 거두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기획&정리 · 정희순 | 사진 · 김도균 | 디자인 · 김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