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장 리콜계획서 낸 뒤… “보완시한 규정 없다” 실행 뒷짐
경유차 배출가스 저감장치 조작 사건을 일으킨 폴크스바겐이 최근 미국 판매차량에 대한 현금 보상 계획을 밝히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는 것과 달리 한국에서는 시정조치(리콜) 계획조차 제대로 밝히지 않고 있다. 폴크스바겐 측은 이미 두 차례나 정부에 불성실한 리콜 계획서를 제출했다가 퇴짜를 맞았지만 “차량 수리를 위한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다”며 오히려 느긋한 표정이다. 리콜 계획서 제출 마감기한이 없는 허술한 국내 법령을 악용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 허술한 국내 법령이 오만 키웠다
폴크스바겐 사태가 불거지자 정부는 지난해 11월 23일 문제가 된 폴크스바겐 경유차량 약 12만 대에 대한 리콜 명령을 내렸다. 리콜 관련 규정이 담긴 ‘대기환경보전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리콜 명령을 받은 업체는 45일 내에 리콜 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진짜 문제는 리콜 계획서가 퇴짜를 맞았을 때 언제까지 보완하라는 규정이 없다는 점이다. 리콜을 압박하기 위해 제출 시한을 뒀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정적인 허점 탓에 첫 계획서를 엉망으로 제출해 퇴짜를 받으면 오히려 시간을 버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다.
문제는 리콜 계획이 언제 마무리될지 알 수 없다는 것. 해당 법인은 “문제가 된 경유차량 15종에 대해 차량 수리를 위한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있다”며 “다음 달 중순쯤 먼저 완성된 소프트웨어부터 한국 정부에 순차적으로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역시 독일 본사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언제 리콜 계획서가 이행될지 알 수 없다. 해당 법인은 22일 “한국 정부의 리콜 승인을 받은 뒤에 국내 소비자 배상 문제를 협의할 예정”이라고 밝혀 오히려 정부를 압박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폴크스바겐 본사가 배출가스 조작 사태로 피해를 본 미국 소비자에게 1인당 5000달러(약 565만 원) 등 3조3900억 원을 배상한다는 내용이 국내에 알려진 뒤에 내놓은 입장이다. 국내에선 법무법인 광장이 폴크스바겐 측에 법률적 조언을 해주고 있다.
○ ‘글로벌 호구’ 된 한국
주무부처인 환경부는 난처한 표정이다. 리콜 계획서를 불성실하게 작성했다는 이유로 1월에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 법인을 검찰에 고발하고 리콜 반려도 가능하다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실제로는 ‘갑질’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모양새이다.
국내 소비자 피해의 민사상 손해배상 소송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바른’의 하종선 변호사는 “환경부가 지난해엔 폴크스바겐에 대한 검찰 고발이 불가능하다고 했다가 정부법무공단에 자문해 올 1월에 고발하는 등 우왕좌왕하는 탓에 압박은커녕 끌려다니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현석 기자 l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