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 C에게.
이곳 생활도 8개월이 지나가는군. 살아 보기는커녕 한 번도 발을 디뎌 본 적도 없는 경북 김천에서의 생활은 약간의 설렘으로 시작했지만 작은 고비들도 있었어.
한 10년 전쯤의 일이야. 경기도 양평에 작은 농가주택을 마련한 어느 선배에게 부럽다고 말했다가 내가 가진 아파트 한 평만 팔면 된다는 힐난을 들었지. 결국 교외에 집을 가진 선배가 아니라 서슴지 않고 동의한 부인을 가진 선배가 부러운 걸로 바뀌었어.
집사람이나 나한테 이곳 김천은 그야말로 사고무친의 땅이야. 그런데 서너 달이 지나면서부터 대구나 대전으로 동창들을 만나러 다니기 시작했어. KTX로 움직이니 다소 교통비가 많이 들기는 하지만 시간으로만 따지면 거의 불편함이 없어. 서울 나들이도 서울에서 살던 시절 지방 나들이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지. 서울 호텔에서 둘이 잔 적도 그 사이 두 번이나 있어. 그리고 둘 다 장 구경을 좋아해서 김천 5일장은 물론이고 인근 상주, 구미, 성주, 영동으로 5일장을 찾아다녀. 상주장에서 곶감을 사고, 영동장에서 호두를 사고, 성주장에서는 참외를 사지.
인근에 자주 나들이하는 곳들도 생겼어. 인현왕후가 폐비된 후 머물렀다는 청암사의 계곡이 아주 고즈넉한데 어제는 입구 마을에 차를 세워 놓고 왕복 4km를 일부러 걸어서 다녀왔지.
결국 둘이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졌어. 서울과는 달리 시간을 같이 보낼 사람의 절대 수가 줄었으니 술자리도 자연히 줄고 삶이 단조로워지고 어쩔 수 없이(?) 부부가 함께하는 시간이 결혼 28년 동안 이렇게 많았던 적이 있었나 싶네. 노년에 함께할 시기에 대한 훈련인가 싶기도 하고.
지난 주말 길거리에서 장사하시던 할머니한테서 돌미나리, 땅두릅나물, 참죽순을 샀는데 소금물에 절였다 꺼내 둔 참죽순이 꾸들꾸들 말랐을 테니 오늘 저녁에는 장아찌를 담가야 해. 집사람이 많이 용감해졌지. 두 달 뒤에 맛이 있으면 좀 나누어 줄게. 행복해야지! 살고 싶은 삶을 살아야지!
―박한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