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로 떠나는 이슬람 건축 기행
터키 에디르네 셀리미예 모스크 내부. 시난이 자신의 역작으로 꼽은 이 모스크는 거대한 사원을 단 하나의 돔으로 덮었다. 사람들은 사원 안에서 같은 하늘 아래 하나가 된 느낌을 얻을 수 있다. 사진=한상무(noon 스튜디오)
불가리아, 그리스와 맞닿은 터키 서북부 도시 에디르네. 이곳에 자리 잡은 셀리미예 모스크는 오스만튀르크 시대를 대표하는 건물로 꼽힌다. 이 모스크를 만든 이는 미마르 시난(?∼1588년)이다. 미마르는 터키어로 ‘건축가’라는 뜻이다. 시난은 이슬람 문화와 건축을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술레이만 1세 시절 궁정 건축가가 된 시난은 셀림 2세와 무라드 3세 때까지 활동하며 오스만 제국의 황금기를 상징하는 건축물을 지었다. 그는 당시까지 도시마다 달랐던 건축 스타일을 하나로 통합했다. 거대한 돔 건축물과 그 주변 세워진 높은 첨탑인 미나레트를 특색으로 하는 오스만식 건축 양식은 시난 시절 확립된 것이다.
이스탄불 술레마니예 모스크(위 사진)와 셀리미예 모스크 돔 지붕에 그려진 캘리그래피. ‘알라는 오직 한 분이다’ 같은 이슬람 경전 꾸란의 구절이 쓰여 있다.
수피 사치 터키 바키프대 건축학과 교수는 “시난은 모든 오스만 건축의 표준을 만들었다. 특히 셀리미예만큼 완벽한 구(球) 형태의 거대한 돔을 올리는 것은 시난 이후의 제자들도 실패했을 만큼 어려운 일이었다”라고 말했다.
지금도 셀리미예는 사원으로 쓰인다. 매주 금요 기도회에는 5000∼6000명의 이슬람 신도가 이곳을 찾는다. 셀리미예는 대형 기도회에 최적화돼 설계됐다. 기둥을 벽 쪽으로 밀착시켜 시야를 가리는 장애물을 없앴고, 메카의 방향을 알리는 미흐라브를 비롯한 니치형 벽감은 이맘의 목소리를 확산시키는 역할도 하고 있었다. 이 사원의 타메르 발라트 이맘(이슬람 성직자)은 “하나의 돔 아래서 모두가 함께 있는 느낌을 얻는다”고 했다.
에디르네에있는미마르시난의동상.
이 시절 시난이 이처럼 많은 건축물을 지을 수 있었던 것은 당시가 오스만 제국의 최전성기였다는 점과도 무관하지 않다. 시난의 손을 거친 통일된 형식의 건축물들은 오스만이 지배한 땅에 소속감을 부여하며 제국의 통합에 기여했다. 최근 터키 문화관광부가 시난의 건축물을 소개하는 데 역점을 기울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난의 건축물을 소개하는 건축 기행도 생겼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터키 관광이 이슬람을 벗어나 기독교 성지 순례나 오스만 이전 역사 유적지에 집중됐다면 시난을 중심으로 한 기행은 정통 이슬람 문화를 소개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에디르네 지역을 관할하는 마흐무트 샤힌 트라키아 주정부 개발공사 사장은 “이스탄불과 트라키아 주정부가 연대해 ‘미마르 시난의 건축 기행’ 코스를 개발하고 있다. 종교를 떠나 진정한 터키의 문화예술을 알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난 시난은 10대에 오스만 제국 내 이교도 젊은이를 대상으로 한 부대 예니체리에 징집된 뒤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터키의 근위병이 됐다. 당시 공병으로서 여러 지역을 두루 다녔던 경험은 훗날 그의 건축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오스만식 건축은 고대 로마의 아치나 높이를 추구했던 중세 유럽의 건축, 비잔틴 건축의 돔 양식 등 다양한 문화의 건축양식을 실용적으로 계승하고 있다.
특히 술레이만 1세를 위해 만든 술레마니예 모스크(1557년)는 셀리미예 모스크와 함께 시난의 대표작이자 가장 유명한 오스만 건축물로 알려져 있다. 시난은 술레마니예에 대해 ‘진정한 첫 작품’이라고 했다. 골든혼이 내려다보이는 이스탄불의 서쪽 언덕 위에 세워진 이 모스크는 웅장한 세련미가 특징이다. 길이 59m, 너비 58m(3422m²)의 거대한 사원에 지름 26.2m의 거대한 돔이 49m의 높이로 올려져 있다. 모스크를 중심으로 200m 근방에 위치한 신학교와 병원 목욕탕 식당 숙소 등을 포함해 쿨리예라 불리는 사원 주변 시설을 돌다 보면 ‘대제’라고 호칭되는 술레이만 1세의 힘을 실감하게 된다. 미술 사학자인 안현배 씨는 “셀리미예와 술레마니예 모스크는 이후 오스만 건축 양식의 표본이 됐다. 한 사람의 생애 동안 이처럼 대규모의 건축물을 여럿 내놓을 수 있는 시스템을 확립했다는 것만으로도 인정받을 가치가 크다”고 설명했다.
술레마니예 모스크의 북쪽 주변에는 시난이 생전에 그 위치를 직접 골랐다는 그의 무덤이 있다. 무수하게 많은 대규모 건축물을 지었던 건축가의 무덤은 겨우 길 끝 모서리 몇 평을 채울 정도로 소박했다. 묘비에는 시난의 친구이자 작가인 사이 무스타파 첼레비가 쓴 글이 남겨져 있다.
“…성스러운 거장은 팔십 군데가 넘는 모스크를 지었네/그가 백수 넘게 살고 마침내 삶을 마감했으니/그가 누운 곳이 장미의 정원이 되었네…시난, 건축가들의 거장이 이제 떠났네/모든 사람들이여 그를 위해 파티하(이슬람 경전 꾸란의 한 구절)를 암송하시오.”
에디르네·이스탄불=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취재 지원=터키 문화관광부, 터키항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