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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현금 없는 사회: 20대 vs 50대 72시간 실험

입력 | 2016-04-23 03:00:00

4000원 갹출도 간편결제로 끝 vs 성당 헌금때 현금 없어 쩔쩔




‘현금 없이 살아가기’ 실험에 참여한 대학생 김재환 씨(27·오른쪽)가 15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의 한 편의점에서 ‘신한 모바일 앱카드’로 결제를 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현금 없이 외식도 하고 쇼핑도 한다.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동전을 들고 다니는 사람은 이미 ‘별종’이 되어 버렸다. 그렇다면 아예 현금이 사라진다면 어떨까. 현금 없는 사회가 코앞으로 다가온 2016년, 27세 취업준비생과 57세 주부에게 지갑에서 현금을 완전히 비운 채 사흘을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흔쾌히 실험에 응한 20대와 어렵사리 참여를 결정한 50대, 그 첫 반응만큼이나 이들의 72시간은 확연히 달랐다.



“그깟 72시간 정도야… 한 달도 현금 없이 거뜬”


취업준비생 김재환 씨(27·연세대 사회학과 4학년)는 평소에도 현금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시간을 취업 준비에 보내는 그는 현금이 아쉬운 경우가 많아야 한 달에 한두 번이다. 김 씨는 평소 ‘T멤버십’ ‘CJ원카드’ 등과 같은 애플리케이션(앱)을 스마트폰에 깔아 두고 그때그때 할인이나 포인트 적립을 놓치지 않는 ‘알뜰족’이기도 하다.



#1 15일 오후 6시 서울 신촌역

취업 스터디를 위해 강남으로 향하는 길. 지하철 개표구 앞에서 교통카드를 꺼내려다 휴대전화에 ‘모바일 티머니’를 설치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모바일 교통카드가 내장된 휴대전화를 가볍게 갖다 대고 지하철 개표구를 통과한다. 아직 어색하긴 하지만 지갑에서 일일이 카드를 꺼내는 수고를 덜 수 있다.

모든 것을 스마트폰으로 해결하는 ‘엄지족’에게 결제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모바일·인터넷으로 전자 지급 서비스를 이용한 금액은 하루평균 2524억 원, 건수는 1940만 건으로 나타났다. 2014년보다 이용 금액은 13.8% 껑충 뛰었다. 김 씨처럼 모바일 교통카드를 사용하는 경우도 일평균 144만 건에 이른다.



#2 15일 오후 8시 서울 강남역 인근 스터디룸


“스터디룸 사용료가 1만6000원이니까 한 사람당 4000원씩 내면 되겠네요.” 돈을 나눠 내는 더치페이의 순간에도 걱정은 없다. 우리은행의 모바일전문은행 위비뱅크가 제공하는 간편 송금 서비스 ‘위비페이’를 통해 계좌이체를 손쉽게 끝냈다. 하루 30만 원까지는 공인인증서나 보안카드 없이 6자리의 핀 번호만 입력하면 송금이 가능하다.

☞20대가 지갑이나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현금은 평균 7만8000원으로 40대(12만6000원), 50대(12만4000원)보다 현저히 적다. 이처럼 지갑이 가벼운 20대를 겨냥해 ‘삼성페이’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토스’ 등 간편 결제 및 송금 서비스가 최근 잇달아 출시되고 있다. 통계청은 모바일 간편 결제시장의 규모가 지난해 9월 말 기준 약 6조225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3 16일 오전 6시 반 마포로 가는 버스 안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는 길. 창밖을 보다가 취업준비용 책을 사야 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서점에 가는 대신 자주 이용하는 ‘YES24 모바일 앱’을 클릭했다. 마침 얼마 전 응모한 이벤트에 당첨돼 1000원 할인 쿠폰도 있다. 미리 카드번호와 비밀번호 등을 등록해 뒀기 때문에 책 선택에서 결제까지 걸린 시간은 10분 남짓에 불과했다.

지난해 모바일 쇼핑에 가장 많이 사용된 지급 수단은 역시 신용카드(64.0%)다. 그 뒤를 휴대전화 소액 결제(24.5%), 모바일카드(19.1%), 체크·직불카드(18.6%)가 이었다. 계좌이체 이용 비율은 2014년 36.8%에서 18%로 크게 감소했다.



#4 17일 오후 6시 10분 서울 서대문구 신촌 편의점


‘오는 길에 도시락 좀 사다 주라. 돈 줄게.’ 방을 같이 쓰는 친구가 문자를 보내왔다. 앱카드로 결제한 뒤 도시락을 샀다. 집에 도착하니 친구는 인터넷 계좌이체를 해뒀다고 한다.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사이지만 현금을 주고받는 대신 계좌이체로 필요한 돈을 주고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고료’는 햄 한 쪽이었다.

간편 결제 서비스가 줄을 잇는 가운데 기존 카드사들은 ‘앱카드’로 대응하고 있다. 스마트폰에 카드사의 전용 앱을 깔고 기존 신용카드 번호를 등록하면 비밀번호나 바코드 등으로 간편하게 결제할 수 있는 서비스다. 앱카드 이용이 늘어남에 따라 모바일 기기를 통한 신용카드 결제액은 2015년 하루평균 300억 원으로 2014년 대비 83.7% 급증했다.



“그래도 지갑에 5만 원 한 장은 있어야”

주부 이금희(가명·57) 씨는 평소 지갑에 현금 10만 원은 꼭 넣고 다닌다. “카드를 사용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씀씀이가 헤퍼진다”는 게 ‘주부 9단’ 이 씨의 신조다. 세탁소 주인이나 택시기사 등에게 3000∼4000원을 결제할 때 카드를 내밀기가 왠지 서먹하고 미안한 느낌이 든다.



#1 15일 오후 2시 패밀리레스토랑

“자, 한 사람당 2만 원.” 아차, 더치페이를 하려고 지갑을 열고 나서야 현금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카카오톡으로 계좌번호를 보내라고 말하려니 쑥스러웠다. 막상 계좌번호를 받고 전화기 버튼을 일일이 눌러야 하는 ‘텔레뱅킹’은 여러모로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보러 가는 길에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이용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ATM은 길 건너 맞은편 아파트단지에 있다. 단지 내 상가에 있던 ○○은행 지점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고급 커피브랜드 프랜차이즈가 들어선 지 오래다.

인터넷·모바일뱅킹 이용이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자동화기기는 줄어들고 있다. 국내 시중은행이 운영하는 ATM·CD기 등 전체 자동화기기 수는 2014년 말 5만3562개에서 지난해 말 5만1115개로 2447개가 감소했다.



#2 16일 오전 11시 동네 피부관리실

“10회 요금을 현금 결제하시면 1회 추가 보너스를 드리는데 현금으로 하실 거죠?” 살짝 고민했지만 1회에 3만 원인 피부 관리를 한 번 더 받을 수 있다는 말에 현금을 계좌이체하기로 했다. 헬스클럽이나 피부관리실 같은 곳에서는 이런 식의 현금 결제 혜택을 주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신용카드 결제 거부를 경험한 비율은 전체 응답자의 4.3%에 불과했지만 현금 결제에 할인을 해주거나 카드 결제 때 추가 금액을 요구하는 등의 ‘가격 차별행위’를 경험한 비율은 8.0%에 달한다.



#3 17일 오전 10시 성당 미사


현금을 준비하지 못하고 성당에 도착했다. 미사 시간 내내 마음이 심란했다. 강론시간이나 성가를 부를 때에도 ‘헌금을 어떻게 할까’라는 생각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돈을 빌릴까도 생각해봤지만 내키지 않았다. 결국 헌금을 포기하고 성당을 나섰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한국은행의 조사에서도 월 현금 지출액(80만8000원) 중 경조금(12만6000원), 종교기부금 및 친목회비(7만 원) 등이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조사비와 종교기부금이 ‘현금 없는 사회’ 도입에 만만치 않은 장애물인 셈이다.



‘현금 없는 사회’, 세대 갈등 부를까


결제 수단을 둘러싼 세대 간 격차는 예상보다 컸다. 20대는 스마트폰을 ‘지갑’처럼 사용하며 현금 없이 거뜬하게 72시간을 버텨냈다. 반면 ‘페이 전쟁’이 한창인 2016년에도 50대는 여전히 현금이 없으면 불편하고 답답함을 느끼는 일이 많았다. 한국은행의 ‘2015년도 경제 주체별 화폐 사용 행태 조사’에서도 50, 60대는 현금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50대는 매달 105만 원, 60대는 매달 71만 원을 현금으로 썼고 월 지출 가운데 현금이 차지하는 비중도 각각 42.3%, 42.9%에 달했다.

이런 세대 격차는 ‘현금 없는 사회’ 도입에도 적잖은 변수가 될 것으로 분석됐다. 장우석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무(無)현금 사회’가 도래하는 상황에서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준비도 필요하다”며 “특히 모든 소비자가 연령 소득에 관계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비(非)현금 수단의 편리성이 더 높아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은행 발권국 김태형 화폐연구팀장은 “현금 보유 취득 지출 등 모든 측면에서 고령층의 현금 선호가 뚜렷하다”며 “고령화 추세가 화폐 수요의 증가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장윤정 yunjung@donga.com·황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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