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파문 확산
정부 집계로 최소 103명이 숨지는 원인을 제공한 옥시레킷벤키저(현 RB코리아)가 불리한 자료를 은폐한 사실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옥시는 흡입독성 동물실험 용역을 준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KCL)이 자사에 불리한 보고서를 내놓자 수령을 거부한 것으로 확인됐다.
○ “폐 이외 다른 피해도 조사 후 지원 확대”
정부의 이런 결정은 살균제 업체들에 대한 엄벌과 함께 꾸준한 피해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환경부 관계자는 “추가 피해 사례가 속속 나오고 있고 피해자에 대한 장기 추적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에 따라 피해 조사를 계속하기로 했다”라고 설명했다.
환경부는 “폐 이외의 건강 피해 가능성을 조사 연구하고 있으며, 해당 분야에 대한 진단 및 판정 기준이 마련될 경우 지원 대상을 확대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이는 검찰이 “폐 외에 다른 장기(臟器) 손상과 가습기 살균제의 인과관계까지 추가 조사해야 한다”는 전문가위원회 의견에 따라 수사 확대를 검토하고 있는 것과 맞닿아 있는 조치다. 3차 피해조사 신청자 752명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하는 시기도 당초 2019년에서 내년 말까지로 앞당긴다. 환경부는 이미 서류를 제출한 신청자들에 대한 조사 및 판정은 되도록 연내 마무리할 예정이다.
○ ‘정직한 실험 결과’ 외면한 옥시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이철희 형사2부장)은 옥시의 의뢰로 실험을 진행했던 KCL 연구진을 지난달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한 결과 옥시 측이 실험 보고서 수령을 거부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KCL 연구진은 2011년 12월 중순경 PHMG의 농도를 6.6배로 놓고 흡입하게 한 쥐의 폐 조직이 실험 4주 만에 딱딱하게 굳어버리는 ‘폐 섬유화’가 나타난 것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쥐의 폐포(肺胞)와 혈관 등이 막혀 폐에 세척액이 들어갈 수도 없을 정도로 섬유화가 진행됐다”는 내용을 보고했다. 그러나 옥시의 수령 거부로 KCL의 ‘정직한’ 보고서는 옥시 측이 검찰에 제출한 의견서는 물론이고 피해자들과의 민사소송 의견서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옥시는 또 더 이상 고농도 실험이 필요 없게 되자 KCL과 계약한 연구용역비 3억 원 중 1억 원을 주지 않았다. 관련 분야 전문가들은 “실험 중간에 용역 목적이 달성돼 실험을 중단하더라도 연구용역비는 발주처가 전액 지급하는 게 관례”라고 입을 모았다.
○ 검, 다음 주부터 옥시 전 대표 줄소환
검찰은 옥시가 저농도 흡입독성 실험을 맡은 서울대 연구진에 1년 예정인 실험기간을 앞당겨 달라고 요구해 넉 달 만에 보고서를 제출받고 연구용역비와 별도로 1000여만 원을 지급한 사실을 파악했다. 이 돈은 4개월에 걸쳐 다달이 연구팀 C 교수 계좌에 입금됐다. C 교수 측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옥시 측이 ‘가습기 살균제가 인체에 해롭다는 질병관리본부의 실험 결과를 뒤집는 보고서를 빨리 달라’고 재촉했다. 실험을 급히 진행한 데 대한 특별격려금으로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특별수사팀은 옥시가 외국인 대표들이 한국법인에 재직했던 2005년부터 꾸준히 피해 민원이 접수됐는데도 살균제 판매를 멈추지 않았던 점 등을 두고 영국 본사로 수사를 확대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다음 주초 살균제 제조 당시 신현우 전 대표 등 옥시의 전현직 임원을 소환 조사한 뒤 거라브 제인, 샤시 쉐커라파카 등 옥시의 외국인 전 대표들도 차례로 불러 조사하기로 했다.
신나리 journari@donga.com·임현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