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포감 때문에 내 배고픔이 가중되었다, 나는 더 속력을 냈다. 숨이 막힐 때까지 세상을 껴안았다.-‘배고품의 자서전’(아멜리 노통브·열린책들·2006년) 》
대부분의 현대 사회인들에게 ‘먹는 행위’는 선사시대 원시인들의 식사와는 다른 의미를 가진다. 우리는 더 이상 목숨을 잇기 위해서, 오로지 혈관과 세포에 포도당을 공급하기 위해 음식을 먹진 않는다. 먹는다는 것의 일정 부분은 정신적인 의미를 띤다. 엄마가 없는 집에 혼자 남겨진 아이가 자꾸 냉장고를 열어 보는 것이나, 연인에게 차인 여자가 빵이나 과자를 끝없이 먹어치우는 등의 경우에서 볼 수 있다. 헛헛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배가 아니라 영혼이다.
‘배고픔의 자서전’은 일부 사실, 일부 허구가 뒤섞인 자전적 성장소설이다. 폭식증과 갈수(渴水)증, 거식증을 차례로 겪으며 주인공 ‘나’는 아이에서 어른으로 자라난다.
여기서 배고픔은 역시 신체적인 것이라기보다 정신적인 결핍이다. ‘나’는 엄마에게, 언니에게, 모든 이들에게 계속해서 나를 사랑하느냐고 묻는다. 어느 날 학교에서 자신을 정말로 좋아하는 친구를 만났을 때 그는 큰맘을 먹고 속삭인다. “나, 사실 벨기에인이야.” 주인공이 신사(神社)에서 몰래 퍼마시는 수천 바가지의 샘물은 어린 시절 불안감과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된다. 그래서 안쓰럽다.
극단적인 설정들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중간중간 아름다운 문장이 침을 삼키게 한다. “나는 두껍게 가루처럼 내려앉은 아름다운 숫눈을 골랐다. 그 위에 물약을 붓고, 수저를 꺼내 취할 때까지 먹었다”와 같은 문장이 그렇다. 밤잠을 설친 새벽, 텅 빈 냉장고를 열어본 기억이 있는 현대인들에게 추천한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