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변호사 폭행사건 파장… 법조계 수임 생태계 드러날지 주목
○ A 변호사 “나는 정 대표의 금전출납부 역할”
부장판사 출신의 A 변호사(여)는 24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도박사건 1건만 맡은 게 아니다. 정 대표의 호텔 종업원 폭행 건 대응 등 민형사 사건 최소 9건 이상에 대응해 변호인만 24명(자문 변호사 포함) 이상이 동원됐다. 자금 지출 명세를 보면 나는 사실상 수감 중인 정 대표의 ‘금전출납부’ 역할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정 대표는 지난해 12월 1심에서 징역 1년의 실형이 선고되자 A 변호사를 중심으로 항소심 변호인단을 새로 꾸렸다. 양 측은 “20억 원으로 대형 로펌 1곳이 포함된 드림팀을 꾸리고 석방을 위해 노력한다”는 취지로 계약했다.
7억 원(세후 4억3000만 원)은 정 대표의 호텔 여종업원 욕설 사건 관련 합의금 등으로도 사용된 것으로 본보 취재 결과 확인됐다. 정 대표 측은 폭행 의혹이 보도된 모 주간지 전체를 5500만 원을 주고 사들여 폐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종업원 3명을 상대로 1억 원 안팎의 합의금을 지불한 적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정 대표와 여성 연예인의 성관계 의혹이 제기되자 변호인 일부가 해당 연예인을 찾아가 “추후 소송을 제기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고 수천만 원을 지급한 증빙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대표와 전직 회사 여직원의 성관계 의혹도 제기돼 변호사들이 각서를 작성한 정황도 포착됐다.
○ 감형 구형에 전관 영향 미쳤나
10억 원(세후 5억7000만 원)은 정 씨의 도박 혐의 재판에서 낮은 형량을 선고받을 수 있는 사유 등 자료를 만드는 데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자문단에 검찰 출신 변호인이 여럿 포함됐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 등도 자문 요청에 응해 도박 사건에서 양형이 감형된 해외 사례 연구가 이뤄졌다. 정 대표 측은 기부를 하면 양형에 참작된다는 취지에 따라 억대 자금을 사회단체에 기부했다.
실제로 검찰은 1심 선고 형량이 낮다는 이유로 항소했지만 항소심에서는 1심 구형량보다 6개월을 깎아주는 구형을 했다. 검찰은 또 항소심 재판 중 보석 신청에 대해 ‘적의 처리’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적의 처리는 재판부에서 어떤 결정을 내려도 무방하다는 뜻이다.
A 변호사는 “처음에는 사건이 이렇게 복잡하고 일이 많을 줄 몰랐다. 직접 매일 접견을 가서 얼굴을 대면하는 조건까지 있어 힘들었다. 자문단에는 대형 로펌 3곳도 포함됐다. 자문 변호사들에게는 시간당 비용은 깎지 않고 드렸다”라고 밝혔다. A 변호사는 “이 정도로 일하고 정 대표에게 폭행당한 게 알려지면 (20억 원을 혼자 챙겼다는 비난 여론이) 좀 나아지려나요. 아니면 제가 정 대표의 금전출납부처럼 일한 사실이 알려지면 제가 더 비참해지려나요”라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정 대표의 구형량이 1심보다 감형된 점, 검찰이 정 대표의 보석에 ‘적의 처리’ 결정을 한 점으로 미뤄 사건이 ‘전화변론 의혹’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정 대표는 보석신청이 기각된 후인 3월 초 A 변호사에게 “석방되면 성공보수로 30억 원을 주겠다”고 했다가 이튿날 A 변호사 등에게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며 A 변호사를 해임하고 30억 원을 되찾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배석준 기자 eulius@donga.com·장관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