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이후 대통령 메시지는… 늦고 소극적, 감동이 없다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레임덕도 두려워 않고, 친박에 의존하지 않고, 국민에게는 무조건 지는… 정치의 원점으로 돌아가 그래서 부활을 예고하는… 그런 대통령은 이제 볼 수 없는가
심규선 대기자
잠시나마 흔들렸던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국민은 비판을 업으로 삼는 기자보다 철저하게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꾸짖을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런 변화에 둔감했으니 말이다.
문제는, 기자가 아니다. 대통령이다. 대통령의 현실 인식과 대처 방식은 야당 시절이나 힘들었던 때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예전에는 쓸 카드가 별로 없는데도 신속 과감한 결단으로 반전의 감동을 안겨줬다. 그런데 지금은 더 잘 드는 칼을 더 많이 갖고 있으면서도 국민의 예상을 벗어나지 못한다. 선거의 여왕은 가고 권위적인 대통령만 남은 것 같다.
대통령이 계파 청산을 선언하라는 요구가 있다. 당 대표를 외부에서 영입하자는 주장도 한다. 그렇게 하든 말든, 친박 당선자가 훨씬 많은 현실에서는 의미가 없다. 주군의 오류에 애써 눈감는 집단에 오류가 없으리라고 믿는 것, 그 자체가 오류다. 진박 마케팅으로 대통령에게 큰 누를 끼친 당선자들은 대통령 존영을 즉각 반납해야 마땅하다. 제1당도, 과반도 아닌 당에서 충성심만으로 뭉친 친박 그룹이 앞에서 설친다면 그런 당의 앞날은 훤하다. 별당 아씨를 보호하겠다는 마당쇠 마인드로는 떠나간 국민의 지지를 되돌릴 수 없다.
대통령이 정말로 야당과 협력할 뜻이 있다면 탈당도 방법이다. 초당적 차원에서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각오와, 대선 국면에서 중립적인 관리자가 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증표로서 말이다.
내각과 청와대는 왜 그냥 두나. 여소야대 때문에 청문회를 걱정하는데, 지금은 비상시국이다. 깨질 때 깨지더라도 의지는 보여야 반전의 기회라도 엿볼 수 있다.
이런 요구를 하면 대통령의 발목을 잡는다고 비난하는 이가 있다. 분명히 해두고 싶다. 대통령이 하려는 일이나 소신, 지향을 포기하라고 한 적이 없다. 방법을 바꿔 보라고 했을 뿐이다.
요즘 국민과 대통령의 관계는 거꾸로다. 원래는 대통령이 국정 대책을 제시한 뒤 국민에게 지지해 달라고 하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국민과 언론이 방법을 제시하고 그렇게 해 달라고 애걸한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거부한다.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그 결과가 이번 총선이자, 30%대 지지율 붕괴다.
야권이 선제적으로 기업 구조조정을 말하고 있다. 예상 밖이다. 경제계 일각의 해석이 날카롭다. 야권이 내년 대선에서 집권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보고, 하긴 해야 하는데 욕먹을 일을 이번 정권에서 해치우자고 생각한 것 같단다. 새누리당의 굴욕이다.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만 채우면 끝이 아니라 정권 재창출을 위해 노력할 의무도 있다. 그렇다면 달라져야 한다. 그러면 기회가 있다. 이번에도 안 바꾸면, 마지막 기대마저 접을 사람이 많다. 바닥을 쳤으니 더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단해서도 안 된다. 바닥 밑에는 지하실이 있다.
심규선 대기자 kss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