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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두 스포츠부장
하지만 1600여 명의 출전 선수 중 단 한 선수만은 목표가 다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박태환이다. 그가 이번 대회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운다 해도 그의 올림픽 출전은 불가능하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이달 초 대한체육회가 그의 국가대표 복귀를 막는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금지약물 양성 반응을 보인 선수에 대해 징계 만료 후에도 3년간 국가대표가 될 수 없다는 국가대표 선발 규정을 개정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소변검사에서 금지약물이 검출된 박태환에게 국제수영연맹이 내린 18개월의 자격정지 징계는 지난달 2일로 끝났다. 따라서 박태환은 2019년 3월 이후에나 다시 태극마크를 달 수 있다. 그의 나이 만 30세일 때다.
프로 무대가 없는 스포츠 종목의 선수에게 국가대표가 되는 길을 막는 것은 사형 선고와 같다. 지금의 박태환에게는 더욱 그렇다. 1년여 전 박태환을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쌓아올린 모든 성과를 약물에 의지한 것으로 보는 시선이었다. 명예 회복을 위해서는 리우 올림픽에서 보란 듯이 성적을 내는 수밖에 없었다. 호주에서 훈련하던 중 사형 선고를 들은 박태환은 그러나 아무런 반응도 내놓지 않았다. 그로부터 보름여가 흐른 뒤 동아수영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입국할 때도 박태환은 “6주간 호주에서 훈련했다. 준비를 잘한 만큼 열심히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고만 말했다.
하지만 CAS 제소는 말처럼 쉽지 않다. 리우 올림픽까지 4개월도 안 남은 촉박한 상황인 데다 승소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한체육회와 싸우는 모양새로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한마디로 박태환이 지금의 상황을 뒤집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때문에 박태환이 이번 대회에 출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박태환은 예상을 깨고 대회 출전을 선택했다.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다. 목표 상실에 따른 허탈감에 예상 못한 부진한 기록을 낼 경우 18개월 전 들어야 했던 ‘한물갔다’는 비아냥거림을 스스로 확인시켜 주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이를 몰랐을 리 없는 박태환이 그럼에도 출전하기로 한 데는 이유가 있다. 박태환의 가족들은 “명예 회복을 떠나서 대한민국 수영 선수로 경기에 참가해 최상의 기록을 내는 건 박태환 스스로에게는 존재의 의미다”라고 말했다. 박태환의 지인도 “솔직히 박태환이 한동안 충격을 받았고, 괴로워했던 건 사실이다. 그래도 동아수영대회 출전은 올림픽과 별개로 바라보고 준비해 왔다”고 전했다.
대한체육회의 결정이 바뀌지 않는다면 사실상 은퇴 무대가 될 이번 대회에서 박태환이 바라는 것은 유종의 미다. 상투적인 말이다. 하지만 실천은 쉽지 않다. 얼마 전 총선에서 낙선한 국회의원들이 잔여 임기를 남겨둔 상태에서 연락이 두절돼 국회 상임위원회가 열리지 못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그래서 박태환의 마지막 도전은 아름답다.
이현두 스포츠부장 ruch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