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은 다양한 수장 공간을 갖추고 있다. 위 사진 정면에 보이는 것이 반침. 반침은 벽 전체에 물건을 넣을 수 있도록 마련한 공간이다. 아래 사진은 아파트 안방 발코니에 설치한 수장 공간. 한옥문화원 제공
장명희 한옥문화원장
한옥에서는 ‘세간을 보관하는 공간’을, 거두어 간직한다는 의미인 수장(收藏)으로 이르고 일상에서도 그렇게 불러왔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수납(受納)’이 그 자리를 대신해 사용되고 있는데, 여기서는 예로부터 써내려 왔거니와 그 의미도 더 적절한 ‘수장’을 사용하려 한다.
한옥에는 아주 다양한 종류의 수장 공간이 있다. 고방 헛간 도장 장광 부경 등등 별도의 방이나 부속공간을 마련하기도 했지만, 다락 반침 벽장처럼 실내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한 경우가 우리의 관심사다.
다락이 높낮이 차로 생기는 공간의 상부를 활용했다면 반대의 경우도 있다. 방보다 높기 마련인 누마루 하부에 벽을 둘러막으면 멍석이며 농기구를 보관하기에 넉넉했다.
그런가 하면 반침과 벽장은 벽체를 밖으로 돌출시켜 만든 수장 공간이다. 벽 전체에 설치하면 반침, 중인방 상부에 설치하면 벽장이라 구분하고, 통틀어 반침이라 부르기도 한다. 반침은 방이나 부엌 등 필요한 곳에 설치해서 옷가지, 이불, 부엌 기물을 보관한다. 또 방과 방 사이에 반침을 들여 상부와 하부를 각 방에서 나누어 쓰기도 하는데, 부엌 아궁이 위에 반침을 들이고, 아래 칸은 부엌에서 식기 보관장으로, 위 칸은 안방에서 이불장으로 사용하는 것도 보았다.
현대에 짓는 한옥에서도 수장 공간의 지혜는 이어지고 있다. 특히 다락에 대한 욕구는 대단해서, 아궁이가 필요하지 않음에도 부엌을 방보다 낮추어 짓고 상부에 다락을 설치하기도 한다. 이렇게 확보한 다락은 철 따라 세간을 보관하기도 하고, 간섭받지 않는 서재가 되기도 하고, 손님을 맞는 다실로 쓰기도 한다. 또 반침을 벽 전체에 들이기도 하지만, 채광을 고려해 중인방의 상부에는 창을 내고 하부에 반침을 넣기도 한다.
서울 서대문의 한 주택에서는 거실 창 쪽에 누마루를 설치하고 다실을 꾸몄다. 누마루 하부에 커다란 서랍을 짜 넣으니 세 아이의 옷가지며 장난감이 넉넉히 들어간다. 서울 목동의 작은 아파트에 사는 윤 선생님은 늘 수장 공간이 아쉬웠던 터에, 안방 앞 작은 발코니에 육송 원목으로 60cm 높이의 함(函)을 짜 넣었다. 뚜껑을 두툼한 우물마루로 짜니 영락없는 누마루다. 누마루 속에 세간을 보관하고, 위에 앉아 밖을 내다보며 차를 마시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리고 있다.
아파트에서는 주방과 거실이 연결된 경우가 많은데, 이럴 때 붙박이장의 상부는 주방에서, 하부는 거실에서 나누어 쓰도록 설치하면 유용할 것이다.
한옥에서는 직선의 목 부재들이 수직과 수평으로 짜이면서 생기는 높낮이 차 또는 방과 방 사이의 공간을 절묘하게 활용하여 거주공간의 손실 없이 수장 공간을 만들었다. 간단하게는 나무 막대 두 개를 걸침으로써 만들어지는, 소소한 세간을 보관하는 시렁이며 선반도 훌륭한 수장 공간이다. 같은 원리의 수장 공간도 집의 평면 구성과 배치 환경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됐다.
한옥 수장 공간의 지혜를 오늘에 활용할 여지는 많아 보인다. 알고 나면 보인다. 오늘의 우리가 한옥을 알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장명희 한옥문화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