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어떻게?]새누리당 비례대표 당선자 조훈현 9단
조훈현 국수는 6월부턴 프로 바둑대회에 참여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프로기사가 국회의원이 된 적이 없어 유권해석이 필요하지만 안 된다는 견해가 많다. 당장 시니어리그에 참가 중인 조 국수의 팀(영암 월출산)에 비상이 걸렸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생각보다 복잡하네. 에휴.” 혼잣말을 하며 한숨을 쉰 그는 책자를 옆으로 밀어놓고 기자를 맞았다.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20대 국회의원 당선자가 된 조훈현 9단(63). 늘 ‘조 국수’로 불리던 그는 6월부턴 ‘조 의원’이라는 낯선 직함도 갖게 됐다.
“바둑계에선 ‘신의 경지에 올랐다’는 입신(入神·프로 9단)이었는데 정치계에선 초단에 불과하잖아요. 초단의 별칭이 수졸(守拙), 간신히 지킬 줄 안다는 뜻인데 제가 딱 그래요. 그 실력도 안 되는 명예 초단이죠. 하하.”
그만큼 ‘황제’ 대접받던 바둑계를 벗어나 ‘일개’ 국회의원이 되면서 적잖은 이미지 손상이 있었다. 그 나이에 권력에 욕심을 부리느냐, 고향이 전남 영암인데 왜 새누리당이냐 등 비난의 목소리도 나왔다.
“프로기사도 이런 길도 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500만 바둑 인구를 대변하는 인물도 필요하고…. 이 나이에 정치로 일가를 이룰 수도 없고 권력에 욕심도 없어요. 4년 동안 열심히 일한 뒤 깨끗이 손 털고 바둑계로 돌아와야죠.”
그의 정치 입문은 평소 친하게 지내던 아마 5단 실력의 원유철 의원(새누리당 원내대표)이 “(국회에) 들어와서 한번 해봐라”라고 권유해 시작됐다. 전혀 생각지 않았던 요청이어서 그도 장고에 들어갔다.
“하지만 분명한 건 저 개인은 어떨지 몰라도 바둑계에는 확실히 도움이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그게 아니면 제가 이 길로 들어올 이유가 없죠. 최근 알파고 때문에 바둑 붐이 불었고 제가 마침 의원이 된 것은 그동안 쇠락하던 바둑계에 좋은 기회라고 봅니다.”
평소 일부 국회의원이 국정감사나 대정부질문에서 호통을 치거나 억지를 부릴 때 혀를 찼던 그에게 “혹시 그런 악역을 맡기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상식선에서 판단해야죠. 저는 성격상 호통 치고 이런 거 못해요. 당에서도 저한테 그런 걸 바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예를 들어 당에서 농성하기로 결정했는데 제 이미지만 생각해서 빠질 순 없는 거죠. 당의 요구와 제 판단의 접점을 찾을 겁니다.”
이번 총선 선거운동 기간 중 그는 가장 인기 있는 찬조 연설자의 한 명이었다. 그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었기 때문. 하루에 주로 수도권 일대 4, 5곳을 돌면서 주먹 쥐며 구호를 외치고 만세 삼창도 했다.
그의 성격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절대 들어주지 않지만 일단 한번 하기로 했으면 최선을 다하는 식이다.
국회의원이 돼서 하고자 한 것이 궁금했다.
“바둑 특별법이나 스포츠 토토의 바둑 참여 등은 민감한 사항이 많아 쉽게 해결은 안 될 겁니다. 하지만 바둑 보급은 정부를 독려해 당장 힘써 보려고요. 하하. 물론 제가 바둑 대표만은 아니고 전체 스포츠계를 대표하는 몫이니 다른 종목도 열심히 챙겨볼 생각입니다.”
지금까지 휴대전화가 없던 그는 최근 정계에 입문하면서 처음으로 만들었다. 그동안 모든 연락은 부인인 정미화 씨(59)를 통해서 이뤄졌다. “전화 받고 거는 것과 문자를 확인하는 건 아는데 아직 보낼 줄은 몰라요.”
:: 조훈현 9단 약력 ::
―1953년 전남 영암 출생
―1962년 9세로 세계 최연소 입단
―1963년 일본에 바둑 유학
―1972년 병역 이행을 위해 귀국
―1976년 국수전 획득 후 10연패
―1980년 처음으로 기전 전관왕 달성
―1982년 국내에서 최초로 9단 승단
―1989년 응씨배에서 한국 기사 최초로 우승
―1994년 후지쓰배 우승으로 모든 세계대회 한 번 이상 우승
―통산 160회 기전 우승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