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 신청을 추가 접수하기로 하면서 전문 의료 인력이 크게 부족한 상황이지만 환경부는 “인력 보충이나 예산 지원 계획이 없다”며 뒷짐만 지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25일 환경보건시민센터에 따르면 검찰의 수사가 본격화된 이달 초부터 현재까지 센터에 걸려온 피해신청 문의 전화는 약 1000통에 이른다. 센터 관계자는 “몰려드는 문의를 다 소화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가습기 살균제 사용자가 수십 만 명에 이르렀던 만큼 문의와 신청이 앞으로 훨씬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가습기 살균제 피해 조사 및 판정을 내리는 의료기관은 현재 서울아산병원 1곳 뿐이다. 홍수종 교수를 중심으로 영상의학과와 소아청소년과 내과 병리학과 등 교수 10명이 관련 업무를 해오고 있다. 지난해 말 피해 접수가 종료된 3차 신청자 725명에 대한 조사 및 판정은 2018년 말까지 진행할 계획이었다.
병원 측은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 홍 교수는 “국민을 위해 필요하다면 속도를 내야 하겠지만 현재의 인력으론 쉽지 않다”고 말했다. 기존 인력으로는 일상 업무를 전부 내려놓고 가습기 살균제 판정에만 매달려도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더구나 정부는 “폐 이외의 다른 장기 손상 가능성까지 조사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그러나 환경부는 “서울아산병원 외에 다른 병원은 참여시키기 어렵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폐손상과 가습기 살균제와의 상관관계를 찾아내는 일이 쉽지 않을뿐더러 지원 수위가 달라지는 1~4등급 판정을 놓고 공정성 시비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에 조사의 일관성이 필요하다는 것. 환경부 관계자는 “조사 및 판정에 속도를 내는 방안은 서울아산병원 의료진이 찾고 있다”며 “예산이나 인력의 추가지원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의료기관을 관할하는 보건복지부와의 협업 여부에 대해서는 “우리 업무여서 의논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이런 속도대로 진행하게 되면 4차 신청자들은 2018년 이후에야 결과를 받아볼 수 있게 된다. 폭주하는 신청으로 조사와 판정 부실해질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및 가족모임의 강찬호 대표는 “5년이 지났는데 얼마나 더 기다리라는 말이냐. 안일한 행정 때문에 피해 배상까지 뒷북이 될 판”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