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슬론(Athlon)'은 PC 매니아라면 참으로 정겨운 이름일 것이다. 인텔의 펜티엄(Pentium)이 PC용 CPU(중앙처리장치) 시장을 그야말로 독점하던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혜성처럼 첫 등장한 AMD의 애슬론은 동 가격대의 펜티엄을 능가하는 성능을 제공, 실속파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높은 인기를 끈 바 있다.
다만, 2000년대 중반부터 인텔 코어 시리즈가 시장의 주류가 되면서 펜티엄은 코어 시리즈 아래에 위치하는 보급형 CPU 브랜드가 되었다. 그리고 애슬론 역시 지금은 AMD의 고성능 제품군은 FX CPU 시리즈 및 CPU+GPU(그래픽처리장치) 통합 칩인 APU 시리즈 보다 아래에 위치한 보급형 CPU 브랜드가 되었다.
AMD 애슬론 X4 845 (출처=IT동아)
애슬론 시리즈가 보급형 CPU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꾸준히 개량을 거듭한 신제품이 나오고 있다. 최근 출시된 애슬론 X4 845 역시 그렇다. 이 제품은 현지 가격 67.99달러로, 경쟁사의 펜티엄 시리즈와 비슷하지만, ‘카리조’ 등의 신형 APU에 작용되는 ‘엑스카베이터’ 아키텍처(기반기술)을 적용해 성능을 개선한 것이 특징이다. ‘가성비(가격대 성능비)’를 강조하는 알뜰파 소비자들을 위해 등장한 이 제품을 살펴보자.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AMD의 PC용 프로세서 제품군은 순수한 CPU 제품은 FX 시리즈와 CPU+GPU 통합 칩인 APU 시리즈로 나뉜다. 칩의 모양은 비슷하지만 호환되는 메인보드가 다르다. 2016년 4월 현재, FX 시리즈는 AM3+ 소켓 기반의 메인보드, APU 시리즈는 FM2+ 소켓 기반의 메인보드를 쓴다.
AMD 애슬론 X4 845 (출처=IT동아)
하지만 애슬론 X4 845의 경우, GPU를 내장하지 않은 CPU인데도 불구하고 APU와 같은 FM2+ 규격 메인보드를 이용한다. 이는 사실 애슬론 X4 845의 내부 구조가 FX 시리즈보다는 APU에 가깝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엑스카베이터 아키텍처 기반의 카리조 APU에서 내장 GPU 기능을 뺀 것이 애슬론 X4 845 아닌가 인식할 수도 있겠다.
다만, 카리조 APU 시리즈는 데스크탑용으로 출시된 적이 없고(노트북용으로만 나왔다), 현재 데스크탑 시장에서 팔리는 APU는 이전의 스팀롤러 아키텍처 기반의 ‘카베리’, 그리고 그 개량형인 ‘고다바리’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APU가 아닌 애슬론에 먼저 엑스카베이터 아키텍처를 적용해 출시한 건 이 제품에 거는 AMD의 기대가 제법 크다는 것을 말해준다. 2016년 4월 현재, 데스크탑 환경에서 카리조의 ‘맛’을 보려면 애슬론 X4 845을 이용하는 방법이 유일하다.
엑스카베이터 기술 적용한 고클럭 쿼드코어 CPU
CPU-Z를 통해 살펴본 AMD 애슬론 X4 845 (출처=IT동아)
다만, 자주 쓰는 데이터를 임시 저장해 성능을 높이는 2차 캐시 메모리의 용량은 2MB(2 x 1MB)로 다소 적은 편이다. 만약 4MB 2차 캐시가 적용되었다면 A8이나 A10 시리즈와 같은 상위급 APU와 거의 같은 CPU 성능도 기대할 수 있었을 텐데, 아무래도 ‘하극상’까지는 바라지 않는 것이 제조사의 기본적인 마케팅이기는 하다. 참고로, 소비전력을 가늠할 수 있는 TDP(열설계전력)은 65W로 평이한 수준이다.
소음 개선한 신형 쿨러 동봉
CPU의 모양의 이전의 제품과 거의 같지만 열을 식히는 동봉 쿨러는 좀 바뀌었다. 특히 냉각팬이 빨간색으로 바뀐 것이 가장 눈에 띈다. 이전의 쿨러에 비해 냉각 성능은 높아지고 소음은 줄었다고 AMD는 강조하고 있다. 물론 이전에 쓰던 AMD CPU 및 APU용 쿨러도 애슬론 X4 845에 호환은 된다. 사용을 해보니 신형 쿨러의 냉각팬 소음은 조용한 편이다.
AMD 애슬론 X4 845의 동봉 쿨러 (출처=IT동아)
제품의 대략을 살펴봤으니 이제는 직접 성능을 테스트 해 볼 차례다. 비교 대상은 데스크탑용 APU 중에서도 제법 상위급 제품인 A10-7860K(고다바리)다. 이 제품은 애슬론 X4 845에 비해 기본 클럭은 0.1GHz 높은 3.6GHz이며 최대 클럭은 0.2GHz 높은 4.0GHz인 쿼드코어 CPU를 갖추고 있다. 코어의 수와 클럭만 따지면 그다지 큰 차이가 없다. 2차 캐시 메모리의 용량이 2배(2 x 2MB)이며, 순수한 CPU인 애슬론 X4 845와 달리 라데온 R7 내장 GPU까지 갖췄다는 점이 다르다.
게다가 가격 차이도 크다. 애슬론 X4 845의 해외 가격은 67.99달러로 인터넷 최저가 기준, 국내에선 10만원 이하의 가격에 형성될 것으로 전망되지만, A10-7860K는 113.54 달러로, 현재 국내에서 18만원 정도에 팔린다. 내장 GPU의 유무를 생각하더라도 가격 차이는 상당히 크다.
테스트 시스템 (출처=IT동아)
이번 테스트에선 에이수스 A88X-PRO 메인보드, 8GB PC3-12800 DDR3 메모리(4GB x 2), 인텔 535 시리즈 SSD(120GB)를 탑재한 윈도우10 64비트 PC를 이용했다. 시스템의 연산 능력을 측정, 점수로 매기는 패스마크 퍼포먼스 테스트의 CPU 마크 점수를 측정해보니 애슬론 X4 845는 5287점, A10-7860K 5603점을 기록했다. 양 제품간의 가격 차이를 생각한다면 애슬론 X4 845의 성능이 상당히 우수한 것이다. 참고로 이 수치는 경쟁사인 인텔의 4세대(코드명 하스웰) 코어 i3과 펜티엄의 사이 정도의 성능인데, 펜티엄 보다는 코어 i3급에 확실히 가깝다.
이 정도의 성능이라면 굳이 인터넷 서핑이나 동영상 재생, 문서 작성과 같은 일상적인 작업에서 어느 수준의 성능을 낼 것인지를 테스트 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당연히 매우 원활한 이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외부 그래픽카드와 조합하면 A10급 APU 못잖은 게임 성능 기대
다만, 애슬론 X4 845는 내장 GPU가 없는 순수한 CPU이므로 CPU+GPU 통합 프로세서인 AMD A시리즈 APU나 인텔 코어 시리즈와 달리, PC를 구성하려면 꼭 별도의 그래픽카드를 꽂아야 한다. 이는 분명 단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예 화면이 나오지 않는다. 다만, 어차피 일정 수준 이상의 고사양 게임을 구동하기 위해선 APU나 코어 시리즈 기반 PC라도 그래픽카드 추가가 필수이므로, 저렴한 비용으로 쓸만한 게임용 PC를 구성하고자 한다면 애슬론 X4 845도 제법 매력은 있다.
그렇다면 시중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20만원대 그래픽카드를 꽂는 경우, 애슬론 X4 845를 탑재한 시스템은 어느 정도의 성능을 낼까? 실속파 게이머들 사이에서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는 지포스 GTX 960(2GB) 그래픽카드를 이용, 애슬론 X4 845과 A10-7860K 시스템에 번갈아 꽂아보며 성능을 측정해봤다.
3DMark 벤치마크 (출처=IT동아)
PC의 게임 구동 능력을 가늠할 수 있는 3DMark 벤치마크 소프트웨어의 'Fire Strike' 모드를 이용, 구동 후 측정된 점수를 비교했다. 애슬론 X4 845 시스템의 경우 5611점, A10-7860K 시스템의 경우는 5682점을 기록했다. A10-7860K이 애슬론 X4 845에 비해 2배 정도 비싼데도 불구하고, 동일한 그래픽카드를 쓸 때는 게임 성능의 차이는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다음은 실제 게임을 구동해봤다. 제법 높은 사양을 요구하는 ‘스타워즈: 배틀프론트’를 구동, ‘호스’ 맵에서 20여분 정도 플레이 하며 초당 평균 프레임을 측정해봤다. 화면해상도는 1,920 x 1,080으로, 그래픽 품질은 ‘울트라’에 맞췄다.
게임 구동 테스트 (출처=IT동아)
테스트 결과, 애슬론 X4 845 시스템이 평균 50~55 프레임 사이, A10-7860K 시스템은 평균 55~60 프레임 사이에서 플레이가 진행되는 것을 확인했다. 어느 정도 차이는 있지만 확연히 구분이 될 정도는 아니며, 두 시스템 모두 원활한 플레이가 가능했다.
A10-7860K APU의 내장 GPU(라데온 R7)는 상당히 좋은 성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어차피 외부에 별도의 그래픽카드를 꽂으면 내장 GPU는 거의 무용지물이 된다. CPU에 투자하는 비용을 최소화하고, 나머지 비용을 그래픽카드에 투자해 게임 성능을 높이고자 하는 사용자라면 애슬론 X4 845도 좋은 선택이다.
알뜰파 게이머 겨냥한 실속형 CPU
사실 AMD에서 새로운 애슬론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다지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카리조기반의 새로운 아키텍처를 적용한다 하여도 성능 향상은 제한적일 것으로 생각했으며, 무엇보다 AMD 프로세서 특유의 고성능 내장 GPU가 생략된다면 구매 가치가 크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만, 실제로 제품을 접하고 테스트를 해보니 의외로 쓸만한 물건이었다. 내장 GPU의 부재 때문에 인터넷이나 문서 작성과 같은 일상적으로 이용할 저렴한 PC용으로 쓰기엔 적합하지 않지만, 별도의 괜찮은 그래픽카드와 조합하면 제법 쓸만한 게임용 PC도 구성할 수 있을 것 같다. DDR4 메모리를 지원하지 않는 점은 좀 아쉽지만, 저렴한 게임용 PC를 생각하고 있었다면 애슬론 X4 845도 좋은 대안이다. 펜티엄 수준의 가격대를 형성한다면 구매 가치가 있을 것 같다.
동아닷컴 IT전문 김영우 기자 peng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