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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해운에 물린 돈 90兆… 은행 건전성 흔들리나

입력 | 2016-04-27 03:00:00

기업구조조정 따른 금융권 영향




정부가 조선과 해운업종을 우선 구조조정 대상으로 지목하자 해당 업종에 거액의 자금을 공급해 온 금융권에도 구조조정의 충격파가 밀어닥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대규모 자금을 지원해 온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은 구조조정에 따른 추가 손실까지 감수할 처지에 놓였다. 해운업보다 조선업의 위험에 더 크게 노출된 시중은행들은 대우조선해양 등 조선업종 ‘빅3’의 운명에 따라 은행 실적과 건전성이 좌우될 것으로 전망된다.

○ 국책은행 “구조조정 실탄 확보해야”

26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조선업계에 대한 국내 은행의 전체 여신(대출, 보증 포함)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 71조8000억 원이다. 이 가운데 산업, 수출입, 농협은행 등 특수은행이 제공한 금액이 54조 원으로 전체의 75.2%를 차지했다. 해운업계 역시 전체 여신 금액(18조2000억 원)의 72.5%가 특수은행들로부터 꿔 온 것이다.

문제는 조선과 해운이 수년째 불황에 허덕이다 보니 돈을 빌려준 국책은행들의 건전성도 함께 나빠졌다는 점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산은의 3개월 이상 연체 채권(고정이하여신)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 7조30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두 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지난해 말 현재 산은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은 14.2%다. 수은은 조선과 해운 등 주요 여신 기업들의 부실 여파로 지난해 9월 말 기준 BIS 비율이 10% 아래로 떨어졌다. 지난해 말 정부의 현물 출자를 통해 10%를 간신히 넘겼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조선과 해운업종을 수술대에 올리게 되면 국책은행들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추가 손실을 부담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이에 따라 정부도 국책은행의 자본을 늘려 구조조정의 실탄을 확보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26일 기자회견에서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에 국책은행의 자본 확충에 나서 달라고 요청했으며, 조만간 관련 기관들과 함께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자본 확충 방식은 정부의 재정 지원이나 한국은행이 직접 국책은행에 출자하는 방법이 거론된다. 하지만 정부가 현물출자 등의 방식을 택하면 재정 부담을 피할 수 없다. 또 한은이 수은에 추가 출자한다면 발권력을 남용한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고, 한은법을 바꿔 산은에 자금을 지원하는 방안은 야당 반대에 부닥쳤다.

○ “조선업 구조조정 여부가 변수”

국내 주요 시중은행들도 조선업 및 해운업의 구조조정 방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시중은행들은 해운 업종에 대한 위험노출도(익스포저)가 낮아 해운업체 구조조정의 충격파에서는 한발 비켜서 있다. 이날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채권단에 자율협약을 신청한 한진해운에 대해 시중은행이 갖고 있는 익스포저는 전체 1조620억 원 가운데 약 20%인 2190억 원이며 KEB하나은행(860억 원), 우리은행(690억 원) 및 KB국민은행(560억 원)에 집중돼 있다.

자율협약이 받아들여지면 시중은행들은 한진해운의 자산건전성을 ‘정상’에서 ‘요주의’로 낮추게 된다. 김은갑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KB국민은행이 이미 180억 원을 적립했으며, 나머지 은행의 부담도 크지 않다”고 말했다. 자율협약이 진행 중인 현대상선의 익스포저에 대한 대손충당금은 이미 확보돼 은행의 추가 부담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관건은 조선업이다. 시중은행의 조선업에 대한 익스포저는 17조8000억 원으로 해운업(5조 원)의 3배 이상이다. 대우조선해양 1개사에 대해 KEB하나은행(8530억 원) KB국민은행(6650억 원) 등 주요 시중은행이 갖고 있는 익스포저만 2조4260억 원에 이른다.

일단 금융권에서는 이날 정부가 발표한 구조조정 방안이 인력 감축 등에 집중돼 있어 당장 은행권에 미칠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은행들이 선제적으로 조선업 구조조정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정욱 대신증권 연구원은 “은행들이 조선업에 대한 대손충당금을 아직 쌓지 않았다. 조선업 상황이 급격히 나빠지면 단기간에 부실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건혁 gun@donga.com·김철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