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악역’ 떠받치는 대한민국 재벌의 민낯
대중문화 속 재벌 캐릭터를 연기한 김범 이기우 남궁민 유아인(왼쪽 위부터). 아래는 물의를 일으킨 실제 재벌가 사람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우울한데 TV나 보자.”(에이전트5) 》
○ 대중문화 속 ‘절대악’이 된 재벌
두 요원은 문득 궁금했다. 대중문화에서 재벌가가 광기 어린 ‘절대악’으로 그려지는 이 현실이…. 진짜 재벌의 모습일까. 혹은 외계인이 이들의 정신에 침투해 조종하는 것은 아닐까? 전국경제인연합회부터 찾아갔다. 대중문화 속 기업인 이미지에 재계의 불만이 크다는 소리를 들었던 차.
“운전기사 폭행 사건의 통계를 낸다면 대기업 오너 말고 다른 직종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재벌 폭행만 주목받죠. 대중문화가 반(反)기업 정서를 높이면 경제에 마이너스가 될 수 있어요. PD나 작가 분들의 이해를 도울 겸 시장경제 강연에 초청해도 색안경을 끼고 안 모여요.”(전경련 임상혁 전무)
거리에서 만난 젊은이들은 ‘수저계급론’을 내뱉었다. “드라마 속 재벌은 2, 3세잖아요. 부모 잘 만난 금수저인데, 안하무인이니 악역으로 딱이죠. 재벌을 응징하면 속시원해하면서도 대기업에 취직하고 싶어서 안달하는 아이러니는 슬퍼요”(대학원생 송모 씨)
○ 10명 중 7명 “악역 재벌은 현실의 반영”
재벌을 직접 만난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두 요원조차 접근 자체가 불가능했다. ‘한 다리 건너 듣기’란 작전을 실시했다. “재벌을 지켜보면 반말은 기본 ‘장착’이죠. 공식석상에서 직원에게 ‘과장님, 갖다 주실래요’라고 해도 좋으련만 ‘야, 이거 좀 가져와라’란 식이에요. ‘서민새끼들’이란 하대 마인드가 강해요.”(재계 담당 기자 A 씨)
프로파일러 출신 배상훈 서울디지털대 경찰학과 교수는 ‘개연성이 있다’고 평했다. “재벌 2, 3세가 ‘절대 위치’로 키워졌잖아요. 다른 사람을 배려할 필요가 없죠. 부모나 형제 등 주변 사람들이 너무 잘나다 보니 강박도 커서 콤플렉스를 갖게 되고 스트레스를 외부로 표출합니다.”
○ 악역 캐릭터도 유행 탄다?
최근 ‘악의 축’ 재벌 캐릭터의 유행은 영화 ‘베테랑’의 ‘조태오’(유아인)가 계기가 됐다. 이후 재벌 캐릭터는 대부분 조태오를 차용했다. ‘베테랑’ 제작사 ‘외유내강’의 강혜정 대표를 찾았다.
“저희도 재벌 혹은 준재벌이라도 만나보고 캐릭터를 만들려 했어요. 그런데 그 누구도 만나주지 않더군요. 실제 그룹 오너들의 보도, 기록을 조합해서 조태오를 만들었어요.”
주인공을 괴롭히는 전형적 ‘밉상’ 악역은 2000년대 초중반 사라졌다. 착한 주인공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선악 구도가 현실성이 없기 때문. 이후 악해질 수밖에 없는 사연을 소개해 연민을 끌어내는 악역 캐릭터가 대세였다. “이제는 악역을 통해 사회가 가진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어요. 대중문화는 현실의 반대급부로 강화됩니다. 현실의 결핍을 허구인 대중문화로 메우려는 욕구가 강해요. 다만 재벌 악당 캐릭터가 너무 많아져 사람들이 식상해하기 시작했어요.”(정덕현 문화평론가)
주인공이 갖지 못한 것은 주인공에 감정 몰입을 하는 우리도 갖지 못한 것…. 그것이 ‘돈’이라면 악당 재벌 캐릭터는 계속될 것 같다는 모호한 결론만 내린 채 신촌으로 향했다.(다음 회에 계속)
김윤종 zozo@donga.com·임희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