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삼존불감
저 고려나 신라 적 우리 조상님네들
생각도 참 갸륵했다
먼 길을 떠날 일이 있으면
혼자 가시지 않고
부처님과 늘 동행하셨다
좌우 두 분의 보살님도 함께 모셨다
아니, 부처님들만이 아니라
한 채의 절, 대웅전을 통째로
품에 안고 다녔으니
얼마나 그 가슴이 넓으셨던가?
하기야,
저 수미산 위의 아득한 도솔천을
품고 살았던 분네들이니
한 채의 절쯤이야 무슨 대수였겠나?
불감의 금동 지붕 위에
천 년의 하늘이 푸르게 고여 있다.
높고 깊은 산속에만 절이 있던가요, 마음속에도 절이 있고 부처님이 계시다고 하던데요. 아파트들 하늘을 찌르고 있어도 내 집 한 칸 없다고 서러울 게 있나요, 여기 ‘금동삼존불감’ (국보 73호) 좀 보세요.
11, 12세기쯤 신라 말엽 고려 초기의 건축 양식을 띠는, 청동 위에 금을 입힌 한 채의 기와집이 어찌나 아름다운지요. 기왓골을 나타낸 지붕의 용마루 양쪽에 매 머리 모양의 치미(치尾)가 있고 네 귀 마루에는 봉두(棒頭) 모양 장식을 했군요. 집안에는 결가부좌한 본존불 좌상이 오른손은 시무외인(施無畏印·다섯 손가락을 펴고 손바닥을 밖으로 하여 어깨 높이까지 올린 모양)하고 왼손은 무릎 위에 대고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의 광배가 투각 불꽃무늬로 꾸며지고 좌우로 두 보살이 서 계신 모습이에요. 스님이거나 믿음이 깊으신 옛 어른들 작지만 아주 큰 이 절을 품안에 두고 사셨던 것이네요.
시인은 ‘저 수미산 위의 아득한 도솔천을/품고 살았던 분네들이니/한 채의 절쯤이야 무슨 대수였겠냐’고 하네요. 참 삼천대천세계를 다스리는 만법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나요. 우리 모두 부처님 손바닥 위의 손오공도 못 되는 것 아니겠어요.
이근배 시인·신성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