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용 논설위원
MOU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지만 경제협력에 이렇게 매진했는데 수출이 1분기에만 1.7% 감소하는 최악의 부진에 빠졌다는 건 뭔가 크게 잘못되고 있다는 신호다. 대통령 도장 값이 이것밖에 안 되나.
대통령 빛내려는 퍼포먼스
MOU는 이해 당사자가 서로의 사정을 널리 헤아리기로 했음을 보여주는 문서다. 각서라고 번역하지만 효력은 메모 수준에 가깝다. 그래도 국가 간 신의성실의 원칙을 간과할 수는 없다. 특히 대통령 순방 때 서명한 문서는 무게감이 다르다.
대통령 순방 때 체결한 MOU 덕분에 교착상태에 빠진 현안이 해결된다면 이상적이다. 2014년 7월 박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한중 정상회담에서 체결한 각종 MOU는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타결의 촉매제가 됐다. 반면 대다수 MOU는 대통령을 빛나게 하는 액세서리에 그친다. 액세서리를 더 화려하게 꾸미려고 관료들은 기업을 귀찮게 하고, 기업은 협상 속도를 조절하며 대통령 순방 날짜를 기다린다.
MOU가 성과를 내려면 개별 기업의 이해관계, 정치 환경, 글로벌 시장 동향이라는 세 박자가 맞아야 한다. 2013년 2월 24일 이명박(MB) 당시 대통령과 태국의 잉락 친나왓 총리는 청와대에서 면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2012년 8월 체결한 ‘수자원 기술협력 MOU’를 이행하자고 다짐 또 다짐했지만 결국 흐지부지됐다. 잉락 총리가 그 후 군부에 의해 축출됐고 박근혜 정부는 4대 강과 연관된 사업을 꺼렸다. 국가 수반들끼리 합의해도 환경이 여의치 않으면 한 걸음도 못 나간다.
정부가 여전히 MOU 외교에 목을 매니 딱하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박 대통령의 이란 방문을 앞두고 MOU, 조약 등 각종 문건 체결 건수가 40건에 이르고 한국-이란 경협 규모가 100억 달러를 넘을 것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중동지역에 투자 유치 수요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MOU가 만능 키는 아니다. 과대 포장, 그만하면 좋겠다.
경제사절단과 조찬이라도 하라
박 대통령은 현지에서 조찬모임이라도 하면서 기업인들이 원하는 정부의 역할에 귀 기울이기를 바란다. 대통령 자신을 ‘빛나는 조연’으로 내리고 기업인들을 주연으로 올리는 건 MOU 몇 건에 비할 수 없는 성과다.
홍수용 논설위원 leg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