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44조원 사업 프랑스기업 낙점
무려 44조 원짜리인 12척 호주 차세대 잠수함 사업을 수주해 군사대국화에 속도를 내려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꿈이 중국의 강력한 태클로 물거품이 됐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첫 대규모 무기 수출을 성사시켜 중국을 견제하면서 미국과 일본 호주 삼각안보 동맹을 강화하려던 아베의 야망에도 차질이 빚어졌다.
일본 프랑스 독일 3파전으로 치러진 호주 차세대 잠수함 도입 사업의 최종 승자는 프랑스 국영기업 DCNS로 결정됐다. 맬컴 턴불 호주 총리는 26일 잠수함 12척이 건조될 남부 애들레이드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프랑스의 제안이 장거리 작전 능력을 포함해 호주가 필요로 하는 능력들을 잘 제시했다는 국방부 관리들의 권고에 따라 결정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이날 호주 정부의 사업자 선정 발표 이후 중국의 반대로 일본이 탈락했다는 ‘중국 외압설’이 불거지면서 돈독했던 일본과 호주의 관계가 틀어질 수 있는 상황이 됐다. 지난해 중반까지만 해도 일본 컨소시엄이 가장 유력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리처드 아미티지 전 국무부 부장관 등 지일파 인사를 총동원해 일본의 수주를 측면 지원했으나 중국의 벽을 넘지 못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7일 호주 소식통을 인용해 “일본은 디자인에서 승무원 활동 공간이 좁고 무기 수출 경험이 부족한 점 등이 복합적으로 문제가 됐다”면서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영향은 호주의 최대 무역 파트너인 중국이 공개적으로 일본의 입찰 시도를 반대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WSJ는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이 올 2월 줄리 비숍 호주 외교장관을 만나 “2차 대전을 기억하고 아시아 국가의 정서를 감안할 것”을 주문하면서 “일본의 무기 수출 야심은 평화헌법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WSJ는 미국의 전투 시스템이 장착되는 호주 잠수함을 일본이 건조하게 되면 미-일-호주 삼국 간 상호작전 능력이 향상될 것이라는 중국의 우려는 쉽게 이해될 수 있다고 풀이했다.
중국은 대환영 분위기이다. 관영 환추(環球)시보는 27일자 사설에서 “중국은 호주가 ‘일본을 버리고 프랑스를 선택한’ 성의를 당연히 높이 평가해 줘야 한다”고 적었다. 신문은 “일본 잠수함이 저소음과 해저탐측 기술 등에서 세계 일류인데도 일본이 수주하지 못한 것은 호주가 국방 영역에서 지나치게 일본과 긴밀해져 중국을 격노하게 만드는 것을 피하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잠수함 사업자 발표는 턴불 총리가 14, 15일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뒤 나왔다.
지난해 9월 토니 애벗 전 총리가 물러나기 전까지만 해도 ‘주머니에 다 넣은 물건’으로 여겼던 호주 잠수함 사업에서 탈락하자 일본 정부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매우, 매우 유감스럽다”고 말했고, 나카타니 겐(中谷元) 방위상도 “호주 측에 설명을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2014년 무기 수출을 원칙적으로 금지한 ‘무기 수출 3원칙’을 폐기한 아베 정권은 첫 무기 수출 시도인 호주 잠수함 사업에 많은 공을 들여왔다. 수주에 성공하면 앞으로 무기 수출이나 국제공동 개발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전망됐으나 첫걸음부터 좌절된 것이다.
베이징=구자룡 bonhong@donga.com /도쿄=서영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