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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없는 생활이지만 열심히 하는 아이들 가르치는 게 즐거워”

입력 | 2016-04-28 15:58:00

신나는 주말 생활체육학교




“후 렛 더 독스 아웃~”

“웁! 웁! 웁웁! 웁!”

23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초등학교 운동장. 유격수를 맡고 있는 남학생이 그룹 바하 멘의 히트곡 ‘후 렛 더 독스 아웃(Who Let the Dogs Out·누가 개들 풀어 놨어)’ 첫 소절을 부르자 다른 수비수들이 다음 가사 ‘웁(Woof·개 짖는 소리)’을 따라 한다. ‘웁’ 소리에 맞춰 크게 어깨를 들썩이는 모습이 힙합 가수처럼 능숙하다. ‘화이팅!’ ‘아자! 아자!’ 정도였던 구호가 흥겨운 노래로 업그레이드 됐다.

매주 토요일 이곳에서는 ‘신나는 주말 생활체육학교’가 열린다. 오전 9시부터 2시간 동안 은 야구를, 이후 2시간 동안은 티볼을 한다. 이날 야구 강습에는 이 학교 4~6학년 19명이 참가했다. 원래 23명인데 같은 시간 아람단 행사가 있어 4명이 빠졌다. 홍일점 여학생은 “어릴 때부터 아빠와 캐치볼을 하면서 야구를 배웠다. 야구가 정말 재미있다”고 말했다.

강습은 황성웅 씨(30)가 했다. 황 씨는 프로야구 롯데 투수 출신이다. 메이저리그 미네소타에서 뛰고 있는 홈런 타자 박병호가 그의 성남고 동기다. 부상 등의 이유로 선수 생활을 일찍 접고 군대에 다녀온 황 씨는 현재 체육교사가 되기 위해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 아이들을 지도한다. 티볼 강습도 그의 몫이다. 황 씨는 “친구가 지난해 여기서 야구를 강습했는데 사정이 생겨 중도에 그만두게 되면서 부탁을 했다. 12월까지 남은 기간만 할 생각이었는데 열심히 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즐겁더라. 그래서 올해 강사 공모에 다시 지원했다”고 말했다.

대한체육회가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민체육진흥공단의 후원을 받아 2014년에 시작한 ‘신나는 주말생활체육학교’(일명 방과 후 스포츠 프로그램)는 학교 안 프로그램과 학교 밖 프로그램으로 나뉜다. 올해 학교 안 프로그램은 전국 4700개 학교에서 실시된다. 강사가 6700명이나 된다.

학교 안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초등학교는 2시간 또는 4시간, 중·고교는 2시간씩 28주를 운영한다. 4시간을 하겠다고 신청한 초등학교는 2개의 종목을 선택할 수 있다. 학교에서 희망하는 것을 100% 반영하다보니 종목이 81개나 된다. 축구(20.72%)가 가장 많고 배드민턴(16.68%), 티볼(10.4%), 탁구(8.14%), 피구(6.93%), 농구(6%)가 뒤를 잇고 있다. 국학기공, 스포츠스태킹, 우슈 등 평소 접하기 어려운 종목을 운영하는 학교도 있다.

올해 참가하는 학교는 지난해 11월 실시한 수요 조사를 통해 선정한 곳들이다. 6364개 학교가 신청했지만 1664개 학교는 지원 대상에서 빠졌다.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지난해 활동 평가가 안 좋았던 곳들은 일단 제외했다. 매년 신청하는 학교가 늘고 있지만 정해진 예산 내에서 양질의 강습을 유지하려면 모두 받아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와 예산(221억 9100만 원)은 같지만 5108개였던 학교를 4700개로 줄인 것도 내실을 다지기 위해서다. 시간당 강사료를 3만 원에서 3만 5000원으로 올렸고, 각 학교에 일괄적으로 30만 원씩 지급했던 용품 지원비도 2개 종목을 운영하는 학교에는 60만 원을 준다.

강사는 매년 초 모집 공고를 거쳐 선발한다. 과거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경험이 있어도 다시 신청을 해야 한다. 더 우수한 자질의 강사를 한 명이라도 더 뽑기 위해서다. 선발된 지도자는 ‘토요스포츠강사 교육’을 받아야 한다. 주말생활체육학교의 취지를 이해하는 것부터 아동 성폭력 예방과 대처 방법, 다쳤을 때의 응급 처치 요령 등을 배운다.

다시 문래초 운동장. 스트레칭을 하고 운동장을 몇 바퀴 돈 아이들이 황 씨의 지도 아래 캐치볼과 수비 연습을 했다. 1시간가량 기본기 훈련을 마친 아이들은 두 팀으로 나눠 경기를 했다. 일주일에 한 번 2시간씩 야구를 배우는 것치곤 실력이 괜찮은 아이들이 꽤 있다. 황 씨는 “프로야구 중계를 많이 봐서 그런지 폼이 예쁜 아이들이 많다”며 웃었다. 5학년 남학생은 “야구가 좋지만 선수까지 할 생각은 없다. 그러려면 리틀 야구단에 가입했을 것이다. 이 정도면 취미로 즐기기에 충분하다”고 말했다. 토요일 오전 신나게 야구를 하려면 나름대로 ‘경쟁’을 거쳐야 한다. 학교에서 가정통신문을 발송해 참가 신청을 받는데 올해는 야구와 티볼 각 종목에 100명 가까운 학생이 신청을 했다. 적정 인원이 20명 정도라 추첨으로 인원을 추렸다.

“빠빠빠~ 빠빠~ ○○○ 안타!” “문래의 △△△~ 문래의 △△△~”

응원전도 볼 만하다. 프로야구에서 자주 등장하는 응원가가 쉼 없이 울려 퍼진다. 노래를 부르며 여럿이 춤도 춘다. 신나게 웃고 떠들다가도 승부처에서는 진지해진다.

2회말 득점 기회에서 6학년 남학생이 힘껏 배트를 휘둘렀지만 공도 건드리지 못한 헛스윙이 됐다. 공격 팀 학생들이 안타까워하는 순간 황 씨가 경기를 멈추고 타자를 1루로 보낸다. “지금 포수의 글러브에 배트가 부딪혔거든. 타격방해에 의한 안전 진루권이 생긴 거야.” 의아해 하던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연스럽게 어려운 룰을 알게 됐다.

이날 현장에는 영등포구생활체육회 소속 생활체육지도자 강수희 씨(27)도 있었다. 강습이 잘 진행되는지 점검하는 게 그의 일이다. 강 씨는 ‘학교 안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학교 밖 프로그램’도 챙겨야 한다. 이날 문래초 인근의 청소년수련관에서는 학교 밖 프로그램으로 수영과 볼링 강습이 진행됐다.

학교 밖 프로그램은 전국 227개 시·군·구 생활체육회가 지역 내 초·중·고교생을 대상으로 2개 종목씩 30주 동안 운영한다. 기존의 시설과 강사를 그대로 활용하면서 강사료와 시설 사용료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볼링, 골프, 수영, 승마, 조정, 클라이밍, 스케이트 등 학교 안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종목을 익힐 수 있어 인기가 높다. 프로그램은 시·군·구 생활체육회가 지역 특성과 학생들의 선호를 고려해 선정한다. 지난해에는 63개 종목이 운영됐고 올해는 48개다. 지역 시설에 따라 스킨스쿠버, 수상스키, 패러글라이딩, 카누, 서핑 등 특색 있는 종목들도 운영한다. 참여를 원하는 학생은 신나는 주말생활체육학교 홈페이지(http://sat.sportal.or.kr)에서 장소와 프로그램을 알아볼 수 있다.

학교 안팎 프로그램 말고도 강 씨가 주말에 챙겨야 할 일은 많다. 동호인들의 체육행사가 대부분 주말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강 씨는 “주말이 없는 생활이지만 현장에서 즐겁게 뛰어 노는 학생들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초·중·고교생의 체격은 커지고 있지만 생활 습관은 건강과 멀어지고 있다. 특히 저학년에서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비만율과 아침 식사를 거르는 횟수, 패스트푸드 섭취 빈도는 늘고 신체 활동과 6시간 이상 수면 비율은 줄었다. 올해 학교 안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은 초등학교 3201개, 중학교 967개, 고등학교 477개로 상급 학교일수록 수가 급격하게 감소한다(그래프 참조). 영등포구의 경우 참가하는 16개 학교 가운데 중·고교는 1개뿐이다. 입시 공부 부담 때문에 참여를 꺼리기 때문이다. 특히 10대 여학생 가운데 주 2회 이상 규칙적인 신체 활동을 하는 비율은 2015년 기준 27.3%로 60대 여성(54.6%)의 절반에 그친다. 주중에 중·고교 스포츠 강사로도 활동하는 황 씨는 “규칙적으로 신체 활동을 하면 생활에 큰 활력소가 된다. 운동을 즐기는 학생들이 공부도 잘 한다”고 말했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