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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남성욱]노동당대회 뒤 ‘총구’는 서울로 향할 것

입력 | 2016-05-02 03:00:00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소장

1980년 10월 열린 북한의 6차 당 대회는 축제 분위기였다. 국내외 상황이 만족스러웠다. 김일성은 후계자로 확정한 김정일을 차기 지도자로 공식 선언했다. 평양 경제도 나쁘지 않았다. 잔치 분위기에 맞게 외빈들도 대거 초청하였다. 특히 남한이 이른바 ‘광주사태’로 혼란에 빠져 있어 김씨 부자는 의기양양했다. 이복동생 김영일, 작은아버지 김영주 등과 치열한 권력투쟁 끝에 후계자가 된 김정일은 김일성의 연설 동안 노간부들에게 손가락으로 지시를 하는 등 부자(父子) 공동정권의 출범을 예고했다. 주체사상을 당의 최고 이념으로 강요받은 대의원들은 일본산 컬러 TV 등 호화 선물을 한 보따리씩 받았다. 지도자와 인민의 이해가 부분적으로 일치했다. 요컨대 김일성 통치 35년을 결산하며 차세대 미래비전을 제시했다.

이번 7차 당 대회는 6차와는 격세지감(隔世之感)이다. 우선 체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꺼내든 비대위의 성격이 짙다. 외빈이 없는 ‘나 홀로’ 행사다. 3대 세습 지도자는 핵과 경제의 병진노선으로 핵실험을 연속 감행했다. 장성택 등 고위층의 계속된 숙청과 국제사회의 초강력 대북제재는 집권 기반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전통 우방인 중국과의 관계도 교착상태다. 난국을 돌파하기 위한 승부수를 띄워야 할 시점이다. 더이상 할아버지 시대의 신격화는 불가능하다. 동요하는 인민들에게 지도력을 과시해야 한다.

이번 당 대회는 세 가지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다. 우선 장시간에 걸친 김정은의 업적 선전이다. 속칭 총화사업이다. 신에서 인간의 위상으로 추락한 젊은 지도자의 입지를 강화하는 데 실적이 중요하다. ‘핵(核)제일주의’로 미국에 맞서는 강인한 지도자상을 부각시킨다. 각종 건설사업도 장황하게 홍보한다. 백두혈통도 강조된다. 다음은 강성국가 건설전략의 제시다. 장기경제발전 계획이나 개혁 조치보다는 제재에 맞서는 ‘제2의 고난의 행군’ 방안을 논의한다. 주체·선군의 기반 위에 ‘자강력 제일주의’라는 노선도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주민들을 고무 추동하고 절대충성을 유도한다. 김정은의 우상화를 선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주력한다. 노회한 권력의 인적 쇄신도 논의된다. 김정은 시대의 본격 개막을 선언하며 당 대회는 폐회될 것이다.

그러면 북한이 자칭 ‘대경사(大慶事)’라 부르는 정치행사는 목적 달성에 성공할 것인가. 왕관을 머리에 얹는 대관식 이후 지도자는 평양의 초라한 현실에 직면할 것이다. 인민들은 컬러TV 선물은커녕 할당된 자금 마련에 허덕인다. 북한은 2월 말부터 경제 건설을 위한 ‘70일 전투’를 진행했다. 인민들의 노력 동원은 한계상황이다. 맨몸으로 발전소 건설과 광산 개발을 독려하는 조선중앙TV 프로그램은 인민들의 피로감을 반영한다. 권력층도 김정은의 광기로 노심초사다.

당 대회로 집안 단속을 강화한 김정은은 국제사회에서 도발과 대화의 아슬아슬한 곡예에 나설 것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으로부터 강력한 5차 핵실험 중단 경고를 받은 최고 존엄은 핵카드를 흔들며 제재 완화를 위한 협상에 주력할 것이다. 고립을 탈피하기 위해 대미(對美) 평화협정 공세를 강화할 것이다. 대남 비난공세와 동시에 출구를 둘러싼 남남갈등도 조장할 것이다. 김정은은 올해 신년사에서 “조선노동당 제7차 대회는 휘황한 설계도를 펼쳐보이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휘황한’이라는 수식어가 핵을 의미한다면 당 대회는 암울한 미래의 서막이 될 것이다.

36년 전 후계체제를 마무리한 김 부자는 대남적화 전략을 강력 추진했다. 1983년 아웅산 폭파사건, 1987년 KAL기 폭파사건 등이 이어졌다. 정세는 상이하지만 전열을 정비한 평양의 총구는 항상 서울로 향했다는 역사를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