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지현 사회부 기자
인터넷 사이트에는 “아예 판매대 철거 운동을 하자”는 움직임도 있었다. 아예 소비자들이 옥시 물건을 진열대에서 꺼내 바닥에 내려놓는 식으로 ‘거부 의사’를 보여야 한다는 것. 5년 동안 침묵했던 가습기 살균제 업체들에 대한 불만은 그 정도로 컸다.
기자도 인터넷 사이트에서 생활용품을 산다. 가격이 싸거나 용량을 크게 주는 쪽으로 클릭을 한다. 어떤 회사가 제조했는지 뒷면을 꼼꼼히 살펴보지 못했다. 이 기회에 집안 곳곳에 사둔 제품 뒷면을 읽다 기분이 멍해졌다. 옥시크린부터 시작해 화장실 청소에 쓰는 ‘뱅’, 아이들 손 씻는 ‘데톨’에 이르기까지 옥시레킷벤키저 상품이 6개가 넘었다. 옥시 입장에서는 사과할 이유가 없었다. 500원만 깎아주면 대량구매 하는 소비자들이 뒤를 받쳐줬기 때문이다.
한국 소비자운동이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모래알과 같다. 그래서 “경품행사를 한다”며 빼간 개인정보를 팔아넘긴 홈플러스에서 아무 말 못하고 장을 본다. 다른 나라에서는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보상을 해주는 폴크스바겐도 한국 소비자들에게는 해주지 않는다. 차 값을 조금만 깎아주면 신나서 더 사는 또 다른 소비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습기 살균제로 사람이 죽어도 “한국의 미세먼지 때문에 폐가 상한 것”이란 업체의 변명을 듣고 있어야 한다.
기자는 최근 혼자만의 소비자운동을 실천했다. 첫 번째는 주거래 은행 텔레마케터의 끈질긴 호소 때문에 가입했다가 설명과 달라 취소 요청을 한 보험 상품, 두 번째는 이동통신사의 이중요금 청구였다. 두 회사 모두 정식계약서는 보내지 않은 채 “우리는 설명을 제대로 했다”는 말만 반복했다. 일반 시민이 이런 경우 쓸 수 있는 수단은 국민신문고를 통해 공정거래위원회와 미래창조과학부 등 정부에 전자민원신청을 하는 것이다.
자신의 신원정보를 넣고, 민원 내용을 꼼꼼하게 적는 것은 귀찮은 일이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 소비자들은 포기한다. 기업이 원하는 일이기도 하다. 기다림 끝에 얻은 답변은 100%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그래도 최소한 다음 피해자는 덜 생길 것이다. 전자민원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관공서가 계속 기업에 해명을 듣고 귀찮게 하기 때문이다.
모래알을 무서워하는 기업은 없다. 그러나 2300원짜리 소비자가 모여 2300억 원짜리가 된다면 그 목소리가 들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