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대개조/ 구조조정의 적들]<1>부실기업과 한 몸이 된 국책은행
기가 찼던 A 씨는 산은에 부당함을 알렸지만 산은은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하지 못했고, 당초 약속받은 자리를 되찾는 데까지 1년이 걸렸다. A 씨는 “은행에서 퇴직자들을 내보내기에 급급할 뿐 이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모른 채 사실상 방치했다”고 말했다.
첫 단추부터 틀어진 A 씨와 대우조선은 갈등을 이어갔다. 결국 취업 2년째 되던 때 대우조선은 A 씨를 대기발령내고, 한 달 뒤 해고했다. A 씨가 회사를 떠난 즈음 당시 정권과 친분이 있는 ‘낙하산 인사’들이 줄줄이 고문으로 선임됐다. A 씨는 회사를 상대로 “부당해고를 당했다”며 소송을 냈고, 2011년 10월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16년이 넘도록 천문학적 부실을 떠안은 채 방치됐다 침몰 위기에 놓인 대우조선과 산은의 관계는 한국 경제의 망가진 ‘구조조정 시스템’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 젯밥에만 관심 둔 국책은행
올 하반기 조선 해운 분야를 중심으로 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앞두고 이 작업을 주도할 국책은행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책은행들이 구조조정을 통해 경제의 선순환을 이뤄내기는커녕 한계기업들의 병만 키우고, 은행 스스로도 부실화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산업은행의 부실채권 규모는 7조3000억 원에 달했다. 전체 여신에서 부실채권이 차지하는 비율도 5.68%로 역대 최고치로 치솟았다. 수출입은행 역시 지난해 말 부실채권 비율이 3.24%로 2010년(0.77%)에 비해 420% 급증했다.
새누리당 오신환 의원실이 산은에서 받은 자료에서 이는 사실로 확인된다. 자료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5년 상반기(1∼6월)까지 퇴직 후 재취업에 성공한 43명은 전원이 산은의 자회사(출자 포함)나 투자·대출 등 거래 관계가 있는 기업에 취업했다. 이들은 자회사의 경영 개선과 효율적인 구조조정 지원을 명분으로 해당 기업에 취업하지만 이를 실행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
2013년 한 워크아웃 대상 대기업의 감사로 취업한 산은 출신 B 씨는 지난 3년 동안 모두 3억 원이 넘는 보수를 받았다. 하지만 이 기업은 B 씨가 취업한 지 1년 만에 자본금이 모두 잠식되고 주식 거래가 중단될 정도로 상황이 나빠졌다. 지난해에는 100억 원가량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퇴직 인력을 전문성 등을 고려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재취업시키는 것은 해당 기업의 구조조정을 더디게 하고 부실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 ‘낙하산 인사’에 무기력해진 조직
국책은행이 젯밥에만 관심을 두는 사이 구조조정의 칼날은 무뎌졌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시중은행은 기업이 한계기업(기업이 3년 연속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상태)으로 판명되기 약 1년 2개월 전에 워크아웃에 착수했다. 반면 국책은행은 한계기업으로 판명되고도 평균 1년 3∼4개월이 지나서야 워크아웃에 나섰다. 국책은행의 구조조정 시점이 시중은행에 비해 2년 반가량 늦는다는 의미이다.
국책은행들의 이 같은 ‘판단 미스’로 인해 한계기업에 쏟아붓는 정책금융의 규모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국책은행이 대기업에 지원하는 금액 가운데 한계기업에 제공된 자금은 2009년 1.9%에서 2014년 12.4%까지 높아졌다. 산업 재편과 신성장동력 발굴 등을 위해 써야 할 귀중한 재원이 대출로 연명하는 ‘좀비기업’에 점점 더 많이 흘러들어 가고 있다는 의미다.
김철중 tnf@donga.com·박희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