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스에 료코는 ‘하나와 미소시루’에서 암환자 치에역을 맡아 삭발까지 하며 열연했다. 영화사 진진 제공
료코의 현주소를 볼 수 있는 최근작을 꼽으라면 아마도 3월 일본 후지TV(국내는 채널J)에서 방영된 드라마 ‘나오미와 카나코’일 것이다. 그가 맡은 나오미 역은 철저히 여성에게 매력적인 캐릭터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가정폭력에 시달렸던 그는 절친한 친구 카나코가 남편에게 폭행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카나코를 폭력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함께 남편을 죽이고 완전범죄를 꾸미는 것.
드라마에서 남녀 간의 로맨스는 철저히 배제돼 있다. 살인을 저지른 뒤 유사 애인 관계나 다름없는 나오미와 카나코는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보다는 폭력에서 놓여난 해방감에 젖는다. 남편을 죽이는 순간의 공포와 광기에 찬 표정, 자신보다 연약한 친구를 지탱하는 굳건한 눈빛에서 과거의 아이돌 료코는 찾아보기 힘들다.
사실 료코는 결혼과 이혼, 그리고 재혼을 한 뒤 또다시 훨씬 더 연하의 남자 배우와 스캔들을 일으키는 등 사생활에서는 더 이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착하고 순수한 소녀가 아니라는 점을 충분히 보여준 바 있다. 반면에 연기에서는 화면에서 예뻐 보여야 하는 아이돌 료코와 등장인물 그 자체이고자 하는 배우 료코 사이에 균열이 감지되곤 했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두 작품에서 료코는 이 균열을 메우는 방법을 찾아낸 듯하다. 귀엽고 맑은 표정 속에 살의를 담고, 생기 가득 넘치는 얼굴로 십수 년 병마와 싸워 온 환자의 지친 표정을 지으면서. 그렇게, 아이돌은 배우가 되었다.
이새샘기자 iams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