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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건 기자의 인저리 타임]한국 축구의 길, 독일을 보라

입력 | 2016-05-04 03:00:00

2000년 유로2000서 8강 탈락한 獨… 유소년 육성으로 축구정책 대전환
새싹 키워쓰기 시스템 정착되며… 구단 재정 안정되고 관중 대폭 증가




▷2000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00)는 독일 축구의 아픈 기억이다. 16개국이 출전한 대회에서 독일은 8강 진출에 실패했다. 조별리그에서 1승도 올리지 못하고(1무 2패) 탈락한 것은 1938년 월드컵 이후 62년 만이었고, 34년 만에 잉글랜드에도 패했다. 직전 대회인 유로 1996에서 우승했고, 유로 1992에서 2위를 했기에 충격이 더 컸다. 독일은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에 눈을 돌렸다. 유소년 육성 프로젝트였다. 2001년 2월부터 분데스리가 클럽들에 유소년 아카데미를 의무적으로 두게 했고, 전년 매출의 5%를 유소년 아카데미에 투자하게 했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독일은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당시 23명의 엔트리 가운데 22명이 유소년 아카데미 출신이었다.

▷유소년 시스템이 정착하면서 분데스리가도 달라졌다. 유럽축구연맹(UEFA) 리그 랭킹에서 한때 이탈리아 세리에A에 밀렸던 ‘톱3’ 자리를 되찾았다. 최근 5시즌 합산 랭킹 포인트에서 분데스리가(79.891)는 3일 현재 스페인 프리메라리가(104.142)에 이어 두 번째다. 하지만 분데스리가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축구 경쟁력이 전부가 아니다. 분데스리가 리포트에 따르면 2013∼2014시즌 기준 평균 관중은 4만3527명으로 2위 EPL(3만6175명), 3위 프리메라리가(2만6741명)를 압도한다. 정책적으로 싸게 책정한 티켓 가격과 다른 리그에 비해 클럽 간 격차가 크지 않은 덕분이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안정적인 재무구조다. 구단들의 전체 수입에서 선수 연봉 등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36.8%로 유럽 평균(65%)의 절반 수준이다. 비싼 선수를 ‘사서’ 쓰는 게 아니라 유소년을 ‘길러’ 쓰기 때문이다. 분데스리가 선수 가운데 유소년 아카데미 출신은 50%가 넘는다. 프로에서 경험을 쌓은 뒤 몸값을 높여 다른 리그로 진출하는 선수가 많기 때문에 선수들의 평균 나이는 23.6세에 불과하다. 유소년 아카데미를 의무화하기 이전인 2000∼2001시즌보다 3.5세나 젊어졌다. 어린 선수를 키워 축구 경쟁력을 강화하고 비용은 줄이는 ‘저비용 고효율 시스템’이 자리 잡은 것이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지난달 말 독일에서 ‘2016 제1차 CEO 아카데미’를 개최했다. K리그 16개 구단의 최고경영자(CEO)가 참석했다. 구단 운영을 책임지는 CEO들을 통해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려는 의도다. 모임의 단장을 맡았던 박세연 전남 사장은 “눈을 새로 뜬 느낌이다. 어릴 때는 놀이로 축구를 배우게 하고 16세부터 기술과 전술을 가르치는 게 인상적이었다. 돌아오자마자 구단 유소년 지도자들에게 이런 방향으로 가야 된다고 당부했다”고 말했다. 한국 축구가 클래식 구단들에 유소년팀 운영을 의무화한 것은 2009년. 독일에 비해 많이 늦지는 않았지만 중요한 건 내용이다. 이번 CEO 아카데미가 내용을 알차게 하는 터닝 포인트가 되기를 바란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