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아빠 구타 피해 가출해… 새벽 3시 반 옛 담임 찾아갔다 다시 돌아온 아이에게… 도벽은 ‘사탄 탓’이라며 5시간 동안 죽음의 매질… 목사 이전에 한 인간의 실패에 재판장도 방청객도 한숨만
송평인 논설위원
아이는 이튿날 선생님의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왔다. 아빠는 다시 ‘훔친 돈이 어디 있느냐’고 추궁했고 답하지 않자 다시 아이를 때렸다. 매가 부러진 줄도 모르고 때리다가 제 손을 다쳤으나 그래도 또 때렸다. 새엄마는 아이가 달아나지 못하게 옷을 벗기고 문을 막아섰다. 아이는 5시간 동안 맞은 뒤 추운 방에 방치됐고 다음 날 아침 시신이 돼 있었다.
재판장은 격해져서 아빠에게 물었다. 아니 따졌다. “피고인, 인간인가요? 인간 맞나?” 방청석에서 흐느낌이 흘러 나왔다. 지난달 29일 인천지법 부천지원에서의 일이다.
안타깝게도 아이에겐 도벽이 있었다. 처음에는 가게에서 껌을 훔치는 수준이었으나 친구들 가방에 손을 대더니 나중에는 돈도 훔쳤다. 부모에게는 아이의 도벽이 큰아들(19)의 도벽과 무관치 않아 더 심각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큰아들은 어릴 때부터 축구부 합숙생활을 하면서 집 밖에서 지내는 경우가 많았는데 못된 친구들에게서 절도를 배우고 동생에게도 가르쳤던 모양이다.
새엄마는 재판 내내 흐느꼈다. 아이는 남편의 세 자녀 중 자기를 가장 잘 따랐다고 했다. 남편이 때릴 때 말리지 않은 것에는 “그때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이가 도둑질 안 하고 거짓말 안 하는 길이라고 여겼다”고 말했다. 후회의 마음이 절절히 느껴졌다. 다만 “훔친 돈 있는 곳만 대면 용서해 주겠다고 했는데도 아이가 ‘그럼 그 돈 못 쓰죠’라고 답했을 때 나도 모르게 뺨을 때렸다. 예상치 못한 그런 반응을 보고 얘가 사탄의 지배를 받는다고 생각했다”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이런 사고방식이 죽음에 이른 매질로 몰고 간 것은 아닐까.
누구나 이미 부부가 아이의 시신을 11개월간 집 안에 둔 데서 기괴함을 느꼈을 것이다. 새엄마는 “자고 일어나 죽은 애를 봤을 때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애가 살아나서 밥도 먹고 걸어 다녔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다. 성경에 부활이 있으니까 그런 기적이 우리에게도 일어나길 바랐다. 매일매일 옆에서 고대하며 지켜봤다. 그러나 깨어나기는커녕 몸에서 벌레가 나왔을 때 죽고 싶었고 무서웠다”고 말했다.
목사도 매일 시신 옆에서 기도했다고 한다. 그가 아이의 부활을 진정으로 믿어서 그랬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그는 사이비 교단의 목사도 아니고 독일에서 제대로 신학을 공부한 사람이다. 범죄가 발각돼 처벌받고 매장될 것에 대한 두려움, 버티면 얻을지도 모르는 신학대 교수 자리에 대한 욕망이 기괴한 심리로 포장됐을 가능성이 있다.
부부는 죽은 아이에게 마지막 말을 하라는 재판장의 주문에 “널 아프게 하고 고통을 주고 네가 하고 싶은 것을 못 하게 해 미안하다. 널 사랑한 건 틀림없는데… 용서해 다오”라고 말했다. 사랑했는데도 죽이다니, 말하는 이도 듣는 이도 한숨만 나오는 완전한 실패였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