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상감모란무늬 항아리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즉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둘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산도 들도 강도 바다도 푸르러가는 5월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전남 강진읍내 영랑생가와 시문학파기념관 앞길에는 모란꽃들이 마중 나와 오는 길손들을 활짝 웃는 얼굴로 반기며 손을 흔든다.
강진읍 남성리에서 자란 영랑(본명 김윤식)은 17세 때 서울 휘문의숙에 입학했다. 2학년 봄 3·1운동을 만나 구두 속에 독립선언서를 감추고 고향에 내려가 독립만세를 모의하다 발각되어 6개월간 대구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했다. 1930년 박용철, 정지용 등과 ‘시문학’을 창간, 카프와 맞서는 순수 서정시운동의 새벽을 열었는데 ‘모란이 피기까지는’은 이 시대를 넘어 국민 애송시로 널리 울려 퍼졌다. 이는 망국의 청년시인의 가슴속에 끓는 조국 광복의 열망이 타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고려청자의 고향도 바로 강진이니 여기 국보 98호 청자상감모란무늬 항아리(靑磁象嵌牡丹文缸)가 사자머리 귀를 달고 눈 시린 비취색 바탕에 백상감으로 모란을 새기고 흑상감으로 잎을 달아 부귀를 거느린 여왕의 자태를 내뿜고 있느니, 저 고려 도공과 조선의 시인이 800년 시공을 넘어 모란을 두고 무슨 교감이 있어 ‘신품명시’의 짝을 이룬 것일까.
시인은 이 오월을 맞아 옛집 마당가에 핀 모란을 그리며 아직도 오지 않는 “찬란한 슬픔의 봄”을 기다리고 계신지? 청자 그릇의 모란은 뚝뚝 꽃잎이 지지 않는데….
이근배 시인·신성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