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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첫 영장… 옥시 英본사 CEO “깊은 유감”

입력 | 2016-05-07 03:00:00

‘보고서 조작 혐의’ 서울대 교수 7일 구속여부 결정




BBC를 비롯한 영국 언론들은 5일(현지 시간)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에 대한 영국 본사 라케시 카푸어 최고경영자의 사과와 주주총회장 밖에서 열린 한국 피해자와 환경단체들의 시위 모습을 상세히 보도했다. BBC 홈페이지 캡처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의 최대 가해 기업인 옥시레킷벤키저(옥시)에서 거액의 뒷돈을 받고 실험 결과를 조작해 ‘연구 윤리를 저버렸다’는 비판을 받는 서울대 수의학과 조모 교수(57)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국립독성과학원장 등을 지내 독성학 관련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던 조 교수는 검찰이 올해 1월 특별수사팀을 구성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한 이후 구속영장이 청구된 첫 피의자가 됐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이철희 형사2부장)은 6일 옥시 측에 유리한 허위 실험 결과서를 검찰에 제출하고 뒷돈을 받은 혐의(증거위조, 수뢰 후 부정처사)로 조 교수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4일 조 교수의 대학 연구실과 자택을 압수수색하고 그를 긴급 체포해 조사해 왔다.

조 교수는 옥시 측의 주문대로 ‘가습기 살균제와 폐 손상 사이에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취지의 연구보고서를 작성하고 뒷돈을 받은 혐의다. 조 교수는 옥시가 제조한 가습기 살균제의 원료 물질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의 흡입독성 실험 데이터를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옥시가 조 교수 측에 연구용역비로 지급한 2억5000만 원 중 일부 자금의 용처를 인건비와 기자재 명목으로 적고 사적으로 유용한 혐의를 포착했다. 조 교수는 개인 계좌로 1000여만 원을 별도 자문료로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조 교수의 구속 여부는 7일 서울중앙지법의 영장실질심사를 거쳐 결정된다.

검찰은 앞서 소환한 신현우 전 옥시 대표이사(68)도 다음 주 초 재소환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등으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할 계획이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김덕종 씨와 환경보건시민센터 최예용 소장은 6일(현지 시간) 옥시의 영국 본사인 레킷벤키저를 찾아 라케시 카푸어 최고경영자(CEO)와 면담했다. 면담에는 카푸어 CEO와 현지 대외협력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면담 후 최 소장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카푸어 CEO가 (피해자들에게) 사과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고 ‘깊은 유감’(profoundly regret)이라고 말했다”며 “결국 영국 본사 CEO가 한국에 직접 와서 피해자들 앞에 진심 어린 사과를 하라는 우리의 요구를 거부한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최 소장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게시판에 글을 올려 “어떤 분들은 세계적 회사의 CEO와의 만남 자체가 성과라고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며 “옥시가 두려워하는 것은 화난 소비자와 국민의 불매운동”이라고 밝혔다. 이어 “옥시의 태도는 한국에서 시작한 불매운동이 전 세계로 번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한 제스처일 뿐이다. 국경을 넘어 세계로 옥시 불매운동이 확산되도록 하는 게 그들을 피해자 앞에 세우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김 씨 등은 형사사건 전문 영국 변호사와 만나 레킷벤키저 이사진을 영국 검찰에 고발하는 사안에 대해 협의한다.

앞서 카푸어 CEO는 5일 주주총회장에서 주주들에게 “대단히 유감스럽고, 개인적으로 매우 죄송하다”고 사과했다고 영국 BBC방송과 파이낸셜타임스(FT) 등 현지 언론들이 6일 일제히 보도했다. 카푸어 CEO는 “이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레킷벤키저가 안전수칙을 변경했다”며 “피해자에 대해 보상하겠다”고 밝혔다. 주주총회장 밖에서는 살균제 피해자 가족인 김 씨 등이 항의 시위를 벌였다.

현지 언론들은 카푸어 CEO의 사과와 함께 한국에서 온 피해자의 시위 내용을 집중 보도했다. BBC는 “레킷벤키저의 CEO가 치명적인 살균제에 대해 한국에 사과하다”라는 제목의 온라인 기사를 게재했다. FT는 “이번 주 한국에서 항의 시위가 일어나고 불매운동이 벌어진 이후 옥시 CEO의 첫 공식적인 발언”이라며 서울의 시위 참가자들이 레킷벤키저 제품을 짓밟는 사진도 함께 실었다.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파리=전승훈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