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노조가 최근 임금 인상 요구안에 승진 거부권 조항을 넣어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차 본사. 동아일보DB
송진흡 산업부 차장
그는 당시 일부 하위직 세무 공무원들 사이에서 현실 안주 분위기가 확산됐던 원인으로 ‘지역 담당제’를 꼽았다. 이 제도는 세무서 공무원별로 담당 지역을 정해 지속적으로 세원을 관리하는 것이다. 세금을 걷는 데는 효율적이었지만 비리가 생겨날 가능성이 높았다. 세금을 내는 사업자와 세금을 징수하는 세무 공무원이 서로 잘 아는 사이여서 뇌물이 오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A 씨는 “승진을 하면 이른바 ‘물 좋은’ 지역을 떠나야 하는 만큼 승진을 하지 않기 위해 은밀하게 로비를 하는 세무 공무원도 있었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국세청이 과세 자료 전산화를 마무리하고 지역 담당제를 폐지한 1999년부터 점차 사라졌다. 각종 징세 과정에 하위직 세무 공무원이 개입할 여지가 줄어들면서 일선 세무서에서 ‘붙박이 근무’를 고집하는 공무원이 확연히 감소한 것이다. 오히려 퇴직 후 받을 공무원연금을 생각해 가급적 빨리 승진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승진으로 월급이 오르면 나중에 받을 공무원연금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현재 현대차에서는 일반직 대리가 과장이 되면 노조원 자격이 없어진다. 연구직은 연구원에서 책임연구원으로 승진하면 같은 절차를 밟게 된다. 노조원 자격을 잃는 과장이나 책임연구원이 되면 연봉제를 적용받고 인사고과에 따른 압박도 생긴다. 반면 생산직은 직급이 오르더라도 노조원 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
재계에서는 현대차 노조에서 나온 ‘승진 거부’ 움직임을 심각하게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승진을 목표로 한 치열한 내부 경쟁이 없어지면 ‘하향 평준화’로 회사 전체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전 세계 자동차 업체들이 사활을 걸고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특히 제품 경쟁력을 좌우하는 연구개발(R&D) 분야에서 내부 경쟁이 없어지면 장기적인 성장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고 자동차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경영권 침해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승진 거부로 최고경영자(CEO)의 핵심 권한인 인사권이 무력화되면 필요한 인력을 적재적소에 배치할 수 없어 정상적인 기업 활동이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승진 거부 논란으로 현대차 노사 관계가 한층 복잡해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동안 생산직에 비해 온건했던 연구직 노조원들까지 제 목소리 내기에 나선 것이 향후 노사 협상 타결에 새로운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때 일부 공무원이 승진을 하지 않으려고 로비를 하기도 했지만 현대차 노조처럼 대놓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흔히 공무원을 ‘철밥통’이라고 하지만 현대차 노조원은 ‘다이아몬드밥통’인 것 같네요.” 전직 국세청 고위 관료 A 씨가 웃으면서 한 얘기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송진흡 산업부 차장 jinh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