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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뱃갑 경고그림’ 위치 담배회사 맘대로?… ‘팥소 없는 찐빵’ 될라

입력 | 2016-05-09 03:00:00

[담배 이제는 OUT!]<1> 규개위 ‘자율 배치’ 권고 논란




‘팥소 없는 찐빵.’

보건의료계 전문가 대부분이 밝힌 ‘상단 배치 명문화 없는 경고 그림 도입’에 대한 의견이다. 담배회사 자율로 경고 그림 위치가 결정되면 담배 판매대에서 눈에 잘 띄지 않는 담뱃값 앞뒷면 하단에 주로 그림이 배치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 경고 그림 하단 배치, 10% 이상 효과 감소

흡연 욕구를 저해하는 혐오스러운 경고 그림이 담뱃갑 하단에 삽입되면 금연 효과는 반감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은 담뱃갑 경고 그림의 위치에 따른 일반인들의 시선 추적 조사를 진행했다. 5초 동안 담뱃갑을 보여주고 △경고 그림 부분(전체 면적의 30%) △경고 문구 부분(20%) △담배 이름 등 기타 부분(50%) 등에 시선이 머문 시간을 측정했다.

조사 결과 참가자 61명의 시선은 상단의 경고 그림에 평균 3.26초 머물렀지만, 하단일 때는 2.78초만 머물렀다. 반면 담배 상품 이름에 대한 노출 시간은 경고 그림이 상단에 있을 때보다 0.64초나 늘었다. 시간으로 따지면 1초가 안 되지만, 경고 그림에 의한 시각적 충격 정도와 금연 효과에서는 엄청난 차이를 낼 수 있다는 게 보건 당국의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경고 그림 상단 배치를 막기 위한 담배회사들의 로비가 전방위로 이뤄지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경고 그림 노출이 실질적 매출 하락으로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다국적 담배회사들은 제품을 소비자에게 가장 잘 보이게 진열해 충동구매 욕구를 높이는 데 집중해왔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2년 담배회사들이 미국 내 소매업자에게 담배 제품 진열 판촉 활동 명목으로 지불한 돈은 4174억 원에 이른다. 국내 KT&G도 주요 담배 판매처인 편의점에 연 850억 원을 지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담배 상품에 대한 노출은 흡연 욕구를 자극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11∼15세 청소년이 담배 광고가 있는 상점을 주 2회 이상 방문할 경우 흡연을 시작할 가능성이 그렇지 않았을 때보다 2배 높았다. 미국 스탠퍼드대의 리사 헨릭슨 박사도 청소년이 일주일 한 번 이상 담배 진열에 노출되면 흡연자가 될 가능성이 50% 증가한다고 분석했다.

○ 쉽게 가려지는 하단 경고

문제는 규개위 결정이 번복되지 않아 경고 그림이 주로 하단에 삽입되면 담배 판매점들이 가리개를 이용해 경고 그림을 가릴 수 있다는 점. 경고 문구만 도입된 현재도 비슷한 행위가 발생하고 있다. 복지부가 지난해 12월 서울 시내 편의점 476곳을 조사한 결과 모든 편의점은 스티커 광고물 부착, 담뱃갑 하단 가리개, 가격표 부착 등을 통해 하단 경고 문구를 차단하고 있다.

복지부는 담배 경고 그림 가리개를 금지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국회 통과가 필요 없는 시행령 개정 사안인 경고 그림 위치 설정에도 애를 먹는 상황에서 국회 본회의 통과가 필요한 가리개 금지 규정을 만들기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 EU도 5월부터 경고 그림 상단 배치 명문화

경고 그림의 상단 배치 명문화는 세계적 경향이다. 담배 규제정책의 전 세계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WHO 담배규제기본협약(FCTC)은 경고 그림을 담뱃갑 앞뒷면 모두 상단에 배치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5월부터 담뱃갑 경고 그림 위치를 상단에 배치하는 것을 의무화한다.

성창현 복지부 건강증진과장은 “FCTC는 경고 그림 면적을 담뱃갑 전체의 50%로 규정할 것을 권고하고 있지만 우리는 30%에 불과하다”라며 “상단 위치마저 지켜내지 못할 경우 흡연율 감소라는 정책 목표는 사실상 물건너갈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