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이재명 기자
정 원내대표가 새누리당의 ‘승리 본색’을 되살릴 인물인지도 의문이다. 이번 총선에선 충남 공주-부여-청양에서 더민주당 후보를 3367표 차이로 이겼다. 국민의당 후보(7350표 득표)가 없었다면 패색이 짙었다. 2014년 충남도지사 선거에선 안희정 후보에게 8.26%포인트, 2012년 19대 총선에선 서울 중구에서 신인 정호준 후보에게 3.95%포인트 차이로 졌다.
그런데도 새누리당은 정 원내대표를 선택했다. 원내대표 경선에 임한 새누리당 당선자들은 이번 총선에서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한’ 국민의 마음을 십분 이해했을 것이다. 최선이 아닌 차선을, 그것도 아니면 차악을 선택해야 했을 테니 말이다. 그만큼 새누리당은 선택지가 사라졌다. 차세대 리더도, 개혁 그룹의 씨도 말랐다. ‘씨 없는 수박’은 과학의 진보일지 몰라도 ‘씨 없는 정당’은 민주주의의 퇴보다.
김영삼 대통령은 이회창 손학규 이인제 등을, 김대중 대통령은 노무현을, 노무현 대통령은 김근태 정동영 등을 내각에 중용해 지도자로 키웠다. 이명박 대통령은 ‘박근혜 대항마’로 정운찬 김태호 등을 염두에 뒀다가 내분을 빚기도 했지만 최경환 유정복 등 박근혜 측 인사들을 데려다 썼다. 그게 박 대통령 집권기에 자산이 됐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보수의 한 축인 이명박 진영을 철저히 배제한 데다 자기 사람도 정치적으로 성장시키지 못했다. 그들만의 정치적 공간을 만들어주지 않은 탓이다. 결국 인적 쇄신을 하고 싶어도 인물난에 엄두를 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나마 현 정부에서 성장한 인사라면 최경환 이정현 정도다. 하지만 최 전 경제부총리는 민심의 역풍을 부른 ‘진박(진짜 친박) 마케팅’의 주범으로 몰렸다. 선거를 진두지휘한 김무성 전 대표와 똑같이 책임지라는 건 죄질에 비해 형량이 가혹한지 모른다. 그럼에도 실세 없는 박근혜 정부에서 박 대통령이 책임을 외면한다면 ‘심판 청구서’는 최 전 부총리를 향할 수밖에 없다. 그런 숙명 탓에 최 전 부총리의 운신의 폭은 좁아졌다. 청와대 정무팀은 총선 전날 박 대통령에게 최 전 부총리를 중심으로 한 향후 당 운영 계획을 정리해 보고했다지만 그 보고서가 빛을 볼지는 미지수다.
그렇다고 이제 와 인위적으로 후계자를 키울 시간도, 역량도 없다. 그러나 아직 희망은 있다. 박 대통령이 ‘원래 박근혜’로 돌아가면 된다. 박 대통령의 초기 권력운용 방식은 ‘분권’ 그 자체였다. 2004년 당 대표가 되고 처음 한 일이 박세일에게 비례대표 후보 추천 전권을 넘긴 것이다. 그때 비례대표 의원으로 당에 들어온 인사가 박재완 이주호 등이다. 이때부터 새누리당에 제대로 된 정책이 만들어졌다. 그렇게 훈련된 정책통들이 이명박 정부를 이끌었다.
박 대통령은 2005년 더 파격적인 ‘분권 리더십’을 선보였다. 정적인 홍준표를 당 혁신위원장에 임명하고 위원 선임 전권을 넘겼다. 당시 혁신위원 17명 가운데 친박계는 홍준표의 고려대 후배인 김선동뿐이었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자신에게 불리한 대선 후보 선출방안 등 홍준표의 혁신안을 그대로 수용했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