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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신평]끝없는 탐욕, 전관예우와 법조브로커

입력 | 2016-05-09 03:00:00


신평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금 독일 총리는 앙겔라 메르켈이다. 전임자인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의 이임식이 과거 CNN으로 중계된 바 있다. 식이 끝나고 슈뢰더가 걸어 나올 때 근엄한 독일 군악대가 연주를 시작했다. 뜻밖에도 미국 대중가요인 ‘마이 웨이’를 경쾌한 리듬으로 뿌렸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직도 TV 화면은 국무회의 석상에서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는 대통령과 그것을 열심히 적는 장관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른바 ‘적자생존’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은 적잖이 실망하고, 나아가서는 우리 현실에 대한 부끄러움까지 갖게 된다. 세상은 빠르게 변해 왔는데, 우리의 권력은 여전히 딱딱하고 근엄하다. 일방통행의 낯선 풍경을 자랑스레 연출한다.

일본의 대학에서 한국 헌정사에 관해 강연을 한 적이 있다. 강연 후의 토론 시간에 일본 대학생들에게 한국이 지금 선진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주기를 요청했다. 놀랍고 고맙게도 80% 이상의 학생들 손이 올라갔다.

그러면 우리는 과연 정말 선진국에 들어선 것일까? 필자를 비롯하여 많은 국민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 그럴까? 선진국이 되지 못하는, 우리에게 모자란 것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권력자가 아직 국민들에게 일방통행식의 소통을 억지 부리는 것도 도저히 선진국이라고 볼 수 없는 큰 징표가 될 것이다. 하지만 선진국과 비선진국을 가르는 좀 더 본질적 기준을 생각해 보자. 아마 그 사회에 공정하고 합리적인 사고가 언제 어디서나 발현될 수 있는 가능성이 아닐까 한다. 다시 말하면 원칙과 상식, 순리가 무리 없이 통하는 사회가 선진사회이다.

네이처리퍼블릭의 정운호 대표가 제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항소한 뒤 보석 결정을 받기 위해 부장판사 출신의 최모 변호사에게 무려 50억 원의 돈을 걸었다. 그러나 이것이 순조롭게 잘되지 않자 정 대표가 최 변호사를 폭행하여 사건이 불거져 나왔다. 이른바 ‘정운호 게이트’이다. 현직 부장판사, 검사장을 거친 잘나가는 전관 변호사를 필두로 하여 군인, 의사, 정치인, 연예인, 재벌가 인사 등 무려 20명 정도가 이 게이트의 전면에 등장하였다. 줄거리는 아주 복잡하다. 그러나 이것을 축약해 보면 간단하다. 우리 사회가 서로 연고에 물려 돌아가고, 그 와중에 기득권 세력이 상부상조하며 자신이 차지할 수 있는 이익을 억척스럽게 챙기는 양상이 핵심이다. 한국 법조의 양대 악의 축인 ‘전관예우’와 ‘법조브로커’가 어김없이 등장한다. 이런 추악한 양상을 보며 무력한 국민들은 절망한다. 우리는 아직 선진국이 된 것이 아니다.

필자의 일본인 스승으로 일본 최고재판소의 대법관을 지낸 소노베 이쓰오(園部逸夫) 선생이 방한했을 때 필자가 한탄하며 말했다. “한국에서는 대법관 출신의 변호사가 사건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은 채 소송 서류에 도장만 찍어주고 그 대가로 3000만 원 내지 5000만 원을 받는 사례가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소노베 선생은 간단히 결론을 내렸다. “그것은 허용돼서는 안 되는 뇌물입니다.”

사법의 생명인 공정성을 확신할 수 없을 때 국민들의 사법 불신은 높아간다. 올해 3월 발표된 형사정책연구원의 설문조사 결과에서 법원과 검찰의 신뢰도가 경찰보다 낮게 나와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공정하게 법 집행이 이뤄지고 있다고 답한 사람은 10명 가운데 2명이 채 되지 않았다.

정운호 게이트는 공정의 이념이 짓밟힌 채 약육강식이 판을 치는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여준다. 연고의 촘촘한 덩굴을 뻗쳐 끝없이 탐욕을 추구하는 세력이 사라져야만 공정과 원칙, 그리고 상식의 밝은 햇볕이 들어올 수 있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선진국이 될 것이다. 아직은 모자란 게 너무 많다.

신평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